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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

에스겔(02) -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7.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에스겔 1:28)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던 그날, 그들이 받은 가장 큰 충격은 무엇이었을까. 나라가 무너진 것, 성전이 불탄 것, 왕조가 끝난 것보다 더 큰 충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시는가?” 천지를 창조하시고, 언약을 따라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던 전능하신 하나님이 다윗에게 “네 왕위가 영원하리라”고 약속하셨던 그 하나님이, 왜 아무 말 없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였을까요?

하나님이 택하신 나라가 망했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신다고 믿었던 성전이 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도 함께 사라지신 것일까요? 이 질문은 단지 고대 이스라엘의 질문이 아닙니다. 삶이 무너질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신가?”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는가?” 에스겔 선지자 역시 그 질문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도 포로였습니다. 성전에서 예언하던 선지자가 아니라, 바벨론 땅 그발 강가에 앉아 있는 포로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절망의 자리에서, 하늘이 열렸습니다.

에스겔 1장 4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내가 보니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폭풍, 큰 구름, 번쩍이는 불, 사방에 비치는 빛, 이 장면은 낯설지 않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시내산에 강림하신 하나님, 엘리야 앞에 나타나신 하나님과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자신이 누구신지를 드러내십니다. 그 임재는 인간의 감각을 압도할 만큼 두렵고 장엄합니다.

그리고 에스겔이 본 것은 네 생물이었습니다. 사람, 사자, 소, 독수리의 얼굴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에스겔은 계속해서
“~같았다”, “~처럼 보였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그가 말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고백한 것처럼, 에스겔의 환상 역시 인간의 언어를 넘어선 하나님의 영역이었습니다.

이 환상이 말하는 핵심은 단순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며,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바벨론에 끌려온 순간에도, 이스라엘의 역사가 끝난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때에도, 하나님의 통치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네 생물은 에스겔 10장에서
“그룹”이라고 불립니다. 그룹은 하나님의 보좌와 늘 함께 등장하는 존재들입니다. 시편 18편은 말합니다. “그룹을 타고 다니심이여…” 이 표현은 시적 과장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분,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하시는 분이라는 고백입니다.

네 생물의 특징은 분명합니다. 사방을 향한 얼굴, 가득한 눈, 번개처럼 빠른 움직임, 영이 가는 곳으로 즉시 반응하는 순종, 이는 온 세상을 두루 살피시며, 어느 한 곳도 놓치지 않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성을 보여줍니다. 바벨론 포로라는 현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는 증거처럼 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보이는 장면은 정반대였습니다. 하나님은 바쁘게 일하고 계셨습니다. 침묵하신 것이 아니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에스겔은 네 생물 위에 궁창을 보고, 그 궁창 위에 보좌를 봅니다. 그리고 그 보좌 위에는 사람의 모양 같은 형상이 있습니다. 불같은 광채, 무지개 같은 영광, 이 장면 앞에서 에스겔은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것입니다. 이 영광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바벨론 땅에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에만 갇힌 분이 아니십니다. 거룩한 장소에만 계신 분도 아닙니다. 포로의 자리, 실패의 자리,
“이제 끝났다”고 느끼는 바로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은 나타납니다.

신약은 이 장면을 분명하게 해석해 줍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는 음성이 들렸을 때, 그것은 에스겔이 본 바로 그 장면의 성취였습니다. 요한은 말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여호와의 영광은 더 이상 환상 속 형상이 아닙니다. 그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기대한 영광은 번쩍이는 불과 심판의 영광이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종의 모습은 그들이 기대한 하나님의 영광과 너무 달랐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가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임을 믿게 되는가? 바울은 말합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믿음은 인간의 이해력이 아닙니다. 새 창조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그 말씀이,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창조하십니다. 그래서 믿는 자는 자신이 질그릇임을 압니다. 능력은 우리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삶이 욱여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고, 답답해도 낙심하지 않으며, 넘어져도 망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에서도 함께하셨습니다. 초대교회의 핍박 속에서도 함께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혼란한 시대에도 여전히 자기 백성과 함께하십니다. 요한계시록의 보좌 환상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니라, 이미 하늘에서 완성된 현실입니다.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그러므로 성도는 현실만 보고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보좌를 바라보고 삽니다. 하늘이 열려 있음을 믿고 삽니다. 지금 당신이 바벨론 같은 삶의 자리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보좌에 계시며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영광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났고,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은 반드시 끝까지, 조금도 어김없이 이루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