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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

출애굽기 - 모세의 결혼과 광야에서의 재교육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13.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의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출애굽기 2:21-22)

모세는 장성했습니다. 히브리인이라는 정체성을 알고 있었고, 애굽의 모든 지혜를 배워 말과 행동이 능했습니다. 그는 준비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형제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애굽 사람이 히브리인을 치는 것을 목격했을 때, 그는 스스로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좌우를 살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그는 애굽 사람을 쳐죽였습니다. 그것은 열심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힘에는 힘으로, 억압에는 폭력으로 대항하는 것은 애굽적 방식이었습니다. 모래 속에 시체를 감춘다고 해서 세상적 힘의 본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튿날, 모세는 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두 히브리 사람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가 잘못한 사람을 책망하자, 돌아온 것은 냉소였습니다.
"누가 너를 우리의 지도자로 세웠느냐? 너도 나를 애굽 사람처럼 죽일 셈이냐?"

모세는 두려워했습니다. 일이 탄로났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이 히브리인들에게서 발견한 것이 애굽의 기질뿐이었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히브리인들이 모세에게서 발견한 것이 애굽의 기질뿐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힘의 체계가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자기를 자랑하고, 힘을 과시하고, 이름을 알려야 지도자가 됩니다. 돈과 권력으로 측정되는 강함만이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모세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자신을 지도자로 내세웠습니다. 누가 세우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통치자와 재판관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다릅니다. 그곳은 은혜와 긍휼로 다스려지는 곳입니다. 죽음에서 건져내시는 하나님의 방식은 애굽적 지혜와 힘을 철저히 부정합니다. 히브리서는 나중에 이 사건을 모세가 믿음으로 바로 공주의 아들 되기를 거절했다고 재해석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모세는 자발적으로 신분을 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살인이 탄로나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 실패를, 이 도망을 사용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모든 것을 부인하고 십자가로 이끄시듯, 하나님의 언약이 모세를 광야로 이끄셨습니다.

미디안 땅, 아브라함 후손이 사는 그곳에서 모세는 우물가에 앉았습니다. 우물은 진리의 물을 함께 먹고 나누는 만남의 장소입니다. 그곳에서 제사장의 일곱 딸이 아버지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려 하는데,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아냈습니다.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왔습니다. 여기서
"도왔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샤', 곧 '구원하다'입니다. 애굽에서는 힘으로 했던 모세가, 이제 미디안 땅에서는 하나님의 언약으로 일하심을 배우고 확인해야 했습니다. 딸들은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냈습니다."

건져냈다는 히브리어
'나찰'은, '짐승의 주둥이에서 건져내다' 라는 뜻입니다. 구원의 언어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습니다. 제사장 르우엘은 모세를 불러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함께 나누었다는 뜻입니다.

모세는 제사장의 딸 십보라와 결혼했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이름을 게르솜이라 했습니다.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흥미로운 것은 이 고백의 방향입니다. 모세가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였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애굽에서 나그네였다는 고백입니다. 공주의 아들로 40년을 살았던 그곳, 애굽의 모든 지혜를 배웠던 그곳이 사실은 탈출해야 할 곳이었다는 깨달음입니다.

모세는 자기 힘으로 메시아 역할을 하려던 모든 것이 무의미했음을 인정했습니다. 결혼과 아들의 출생을 통해 하나님의 톨레도트를 확인하면서, 그는 비로소 하나님의 언약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을 말하면서도 정작 그 나라가 임하기를, 그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바벨론이 무너지듯 세상의 것들이 무너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말씀에 굴복시켜 진리가 되게 하시고, 교회가 되게 하시며, 그 왕국이 되게 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으로, 십자가에서 피 흘린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만 영광이 돌아가는 그의 몸이 되게 하십니다.

그것이 은혜이고, 긍휼입니다. 우리의 열심이나 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언약으로만 이루어지는 구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