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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

아가서 - 돌아오라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15.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석류나무가 꽃이 피었는가 알려고 내가 호도 동산으로 내려갔을 때에,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나를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에 이르게 하였구나.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아가 6:11~13)

아가서가 노래하는 사랑에는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끊어지지 않고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언제든 끊어지고 변할 수 있는 세상의 사랑과 달리, 아가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랑을 노래합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라 할지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끊어지지 않는 사랑이 평안함이 되는 곳, 사랑을 알고 사랑을 믿는 삶, 그것이 천국입니다.

끊어지지 않는 사랑을 믿는 사람은 자신의 노력으로 사랑을 지키려 하거나 자기에게로 끌어오려는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으려고 선한 노력이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 없는 이방인의 행위로 규정되는 이유입니다.

사랑 안에 있는 성도에게는 지켜야 할 것이 없습니다. 십자가의 사건이 함께하는 것이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사건으로 거룩한 성도라는 존재가 만들어지는 것이지, 우리의 행위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옛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지음 받은 것이 성도라는 점에서, 성도는 없는 데서 있게 된 존재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세상에는 없는 특이한 현상을 증거할 자로 지음 받았다는 것을 자신의 존재 이유로 삼아야 합니다.

본문 11, 12절은 이상한 장면을 보여줍니다.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석류나무가 꽃이 피었는가 알려고 내가 호도 동산으로 내려갔을 때에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나를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에 이르게 하였구나."

호도 동산에 가서 포도나무의 순과 석류나무의 꽃을 보겠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면 푸른 초목이 있는 골짜기로 가야 하고,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지 보려면 포도원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호도 동산으로 간다는 것은 어리석어 보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없는 데서 있게 하는 현상을 따르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율법의 행위를 가르친 유대 기독교인의 말을 받아들이고, 한국교회가 행함을 믿음의 실천으로 가르치는 이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한마디로 말하면 없는 데서 있게 되는 현상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세상의 논리에 갇혀, 선을 행하지도 않고 사랑받을 일을 한 것도 없이 구원받고 완전한 자로 여김 받는 사랑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욥의 친구 엘리바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욥 4:7~8). 엘리바스는 고난의 원인을 죄에서 찾습니다. 포도나무 순을 보려면 포도원으로 가야 한다는 세상의 통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은 이 세상의 논리를 뛰어넘습니다. 술람미 여자를
'나의 사랑하는 자', '나의 완전한 자'로 부르는 것은 세상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여자의 부족함과 허물, 그 모든 것을 이기고 등장한 사랑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임을 안다면, 사랑받은 성도 또한 세상 밖에서 사랑을 만나야 합니다.

13절에서 예루살렘의 여자들은 술람미 여자에게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남자는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라고 반문합니다. 신랑의 끊어지지 않는 완전한 사랑으로 어떤 허물이 있다 해도 변함없이 아름답고 완전한 자로 불려지는 술람미 여자, 예루살렘의 여자들은 그 완전한 아름다움을 보고 싶어 합니다.

술람미 여자는 남자의 사랑에 의해 이미 완전한 아름다운 신부로 존재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알 수 없고 볼 수 없는 아름다움입니다. 세상은 호도 동산에서 포도나무를 볼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자신들보다 나을 것 없는 여자인데 신랑의 사랑이 완전하기에 완전한 신부가 되었다는 관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사랑을 줄 건데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어라'는 요구가 성경에는 없습니다. 사랑받은 성도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랑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사랑에 의해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여겨지는 것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보지 않고 완전하다 하십니다. 이 사랑이 당신의 기쁨이 되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되어라'는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이 사랑이 당신께 자유가 되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오신 우리의 신랑 예수님만 자랑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