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12:24)
봄이 시작되면, 겨우내 얼어붙어 있던 땅은 조용히 숨을 틉니다. 그때 나는 대지에 조그마한 구멍 하나를 팝니다. 그것은 단순한 흙을 파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조용한 의식과도 같습니다.
그 구멍 속에는 지난 계절 동안 내 안에 쌓여 온 것들을 하나하나 넣습니다. 다시 읽고 싶지 않은 종이 뭉치들, 부끄러웠던 말들, 무의미했던 행동들, 그리고 마음을 어둡게 만들었던 생각의 파편들, 또한 꺼내어 버리지 못해 마음 한 귀퉁이에 쌓아 두었던 실수들까지....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불평과 원망을 반복했던 것처럼, 나도 삶의 길에서 넘어지고 흔들리며, 하나님보다 세상의 소음에 더 귀를 기울이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꺼내 그 땅 속에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헛간에 보관되어 있던 것들도 함께 넣습니다. 한 움큼의 햇빛처럼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셨던 기회들, 성장의 과정에서 이미 쓰임을 마친 것들, 더 이상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는 것들, 그 모든 것을 내려놓으며 나는 고백합니다.
“주님, 저는 제게 주어진 은혜를 충분히 누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작은 소리에도 흔들리며, 경이로움을 잊고 살았으며, 사람들의 인정만을 바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바람을 느끼며, 충직하게 한자리를 지켜온 나무들 앞에서 나는 고백합니다. 나의 죄를, 나의 부족함을, 나의 연약함을, 흙 속에 내려놓는 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정직한 회개의 몸짓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구멍을 흙으로 덮습니다. 그 어둠의 문을 닫습니다. 그러나 그 문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시작의 문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12:24) 내가 묻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새 생명입니다. 흙 속에 덮인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과정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곳, 하나님 앞에서 내려놓은 고백의 자리에서 낡은 것이 새것으로 피어납니다. 어둠 아래 숨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겨 다시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봄은 그저 자연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영혼에도 허락하시는 계절입니다. 정화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은혜의 역사입니다. 나는 다만 그분이 일하실 수 있도록 내 마음을 열고, 묵혀 두었던 것들을 그분께 드릴 뿐입니다.
그리고 결국 깨닫습니다. 흙 속에서 새로움을 피워내시는 분도, 내 안에서 새 생명을 시작하시는 분도,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주님, 제 안의 겨울을 지나 새봄을 허락하신 당신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를 새롭게 하소서. 그리고 당신 안에서 다시 피어나게 하소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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