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사무엘하 12:13)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를 오래 믿으면 믿을수록, 죄는 조금씩 밀려나가겠지. 신앙의 연륜이 쌓이면 더 성숙하고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 가겠지.” 그러나 다윗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 순진한 기대를 정면으로 깨뜨립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왕이 되기 전에조차 “기름부음 받은 자” 사울을 죽이지 않았던 인물, 율법을 몸에 밴 것처럼 지키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다윗이 어느 날, 욕정 앞에서 무너지고, 그 죄를 감추기 위해 충성된 부하의 피를 흘리게 하고, 마침내 그 가정을 완전히 붕괴시킨 죄악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요? 그리고 이 질문은 결국 우리 자신을 비추는 질문이 됩니다. “나는 다윗과 다를 것 같은가?”
죄는 점점 사라지는 ‘찌꺼기’가 아닙니다. 많은 성도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를 오래 믿으면 믿을수록 내 안에 죄가 줄어들고, 선행이 쌓여 가며, 내 인격과 영성이 점점 더 고귀해질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반대의 증거들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젊을 때보다 왕이 되어 안정된 후에 더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솔로몬은 지혜의 왕에서 우상숭배자로 떨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산의 믿음 이후에도 수많은 실수와 방탕한 행위를 반복했습니다.
왜 위대한 성경 인물들이 말년으로 갈수록 더 이상한 행동을 보였을까요? 이는 성경이 끊임없이 강조하는 한 진리를 드러냅니다. “인간은 결코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 성도의 성숙은 ‘실력’이 아니라 ‘고백’이다.” 하나님은 인간 안에 ‘개발 가능한 가능성’을 보시고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든 부끄러운 이야기인 다윗의 죄, 아브라함의 실수, 솔로몬의 타락은 “은혜 없이는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참된 성숙이란 ‘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죄인임을 더 깊이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진짜 성숙한 장면이 언제인가요? 사울을 죽이지 않은 때? 하나님 앞에 춤을 추던 때? 전쟁에서 승리할 때? 아닙니다. 성숙의 절정은 바로 이 한마디에서 나타났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그 단순한, 그러나 가장 깊은 고백. 그 자리 위에 하나님의 용서가 떨어집니다.
성도가 죽는 날까지 해낼 수 있는 단 하나의 일, 그리고 해내야 하는 단 하나의 일은 이것뿐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이 고백이 점점 더 진실해지고, 더 깊어지고, 더 자주 올라온다면, 그것이 바로 성숙입니다. 우리가 훌륭해져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더 무너질수록 예수의 의가 더욱 귀하게 보이도록 하십니다.
‘나’라는 존재가 중심이 되는 순간 모든 판단은 흐려집니다. 이것이 죄의 실체입니다. 죄는 단순히 도덕적 과오가 아니다. 죄의 본질은 “나라는 존재를 중심에 세우는 것”입니다. 다윗이 우리아를 죽일 때 그는 더 이상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목동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저 ‘자기 유익’을 붙잡은 인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습은 우리 자신을 적나라하게 비춥니다. “나는 절대 저렇게 안 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이미 죄의 본질을 모르는 것입니다. 죄 앞에서 우리는 모두 다윗입니다. 눈이 멀고, 판단력이 흐려지고,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등 뒤에 두고 편안한 침대에서 자기 욕망을 챙길 수 있는 사람, 그게 인간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유일한 ‘의로움’은 내 행위가 아니라, 예수의 옷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너희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사 64:6) 다윗의 선행? 아브라함의 순종? 솔로몬의 지혜? 그 어떤 것도 하나님 앞에서 의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의는 단 하나입니다. 예수의 의입니다. 계시록이 말하는 “성도들의 흰 옷”은 성도들의 업적이나 도덕이 아니라 예수의 피에 씻긴 옷입니다. 성도는 예수라는 옷을 입지 않으면 아무리 고상한 행위를 한다 해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성숙의 정점은 ‘더 나아지는 나’가 아니라 ‘더 무너져 예수만 붙드는 나’입니다. 우리는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날마다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그 깨달음 위에 떨어지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하나님은 죄를 조금씩 줄여서 거룩하게 만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부어 우리를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무너지는 자리마다 예수의 은혜가 채워지고,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자리마다 하나님의 용서가 선포됩니다.
성도의 성숙이란 ‘고백의 깊이'입니다. 성도의 삶은 점점 훌륭해지는 인생이 아니라, 점점 더 “나는 죄인입니다”를 진심으로 고백하게 되는 인생입니다. 그 고백 안에서만 하나님의 은혜는 비로소 우리에게 실제가 됩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우리를 붙잡아 마지막 날까지 인도하십니다. “주여, 나는 여전히 죄인입니다. 그러나 나를 덮는 예수의 의만을 붙듭니다.” 그 고백을 할 수 있는 인생, 그것이 바로 성숙한 성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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