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약 말씀 묵상

하나님의 궤 앞에 엎드려진 다곤 - 하나님은 결코 도구가 되지 않으신다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0. 28.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또 엎드려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은 부러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삼상 5:3~4)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패했습니다. 그들은 왜 패했는가? 하나님을 ‘
믿은 것’이 아니라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법궤가 하나님을 상징하므로, 그들은 법궤만 전쟁터에 나가면 승리할 줄 알았습니다. “법궤가 있으니, 하나님이 우리 편이겠지.”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도구가 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법궤는 블레셋에 빼앗겼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패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종교심이 무너진 사건이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법궤를 다곤 곁에 두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필요할 때 꺼내 쓰기 위한 신 중 하나로 선반 위에 올려놓았을 뿐입니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이 바로 그렇습니다. 예배당 안에는 하나님을 모시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세상의 우상들과 함께 공존하는 신앙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문제가 생길 때만 꺼내 쓰는 비상약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취급을 받으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도구가 아니라 주(主) 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다곤이 엎드러졌습니다. 그들은 다시 세웠습니다. 또 다음 날, 다곤은 머리와 손이 부러진 채 쓰러졌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우상을 무너뜨리십니다. 다곤은 인간이 세운 모든 이념, 사상, 종교, 도덕, 성화 체계의 상징입니다. 인간은 늘 “
하나님 없이도 잘할 수 있다”고 외치며 스스로의 의와 업적을 세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역사의 모든 순간마다 그 거짓된 신들을 무너뜨리셨습니다. 르네상스, 과학, 공산주의, 그리고 교회 안의 도덕주의와 자기 의의 다곤들, 모두 부서졌고, 또 부서질 것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라.”(고후 5:4) 이 말은 곧, 우리는 스스로를 벗어낼 수도, 새 사람을 만들 수도 없다는 고백입니다. 성화는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죽은 것이 생명에 삼켜지는 은혜의 사건입니다. 인간의 성화운동은 “벗어보려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의 의를 덧입는 것”입니다. 그 덧입음의 과정에는 언제나 탄식과 인내가 따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붙드시기 때문에 우리는 마지못해 끌려가며, 그 속에서 탄식합니다. 이 탄식이 바로 성도의 표지입니다. “기합”이 아니라 “탄식”, 내 힘이 아니라 은혜로 끌려가는 자의 신음입니다.

우리는 종종 “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 애씁니다. 그러나 진짜 성화는 포기의 여정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도달하는 길이 아니라, 끌려가며, 깨지며, 낮아지는 여정입니다. 그래서 성화는 ‘해보겠다’는 기합이 아니라 ‘못하겠습니다’라는 탄식으로 증명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고, 내 안의 다곤을 부수시는 그 자리에서 우리는 참된 생명을 경험합니다.

평화가 폭탄 한 방에 무너졌듯, 우리의 삶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때 드러나는 것은 내가 붙든 것이 무엇이었는가입니다. 내 손에 남는 것은 내 행위나 업적이 아니라 십자가뿐이어야 합니다. 그 어떤 것도 주 앞에서 들고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그러나 예수로 옷 입은 자로 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