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한복음 20:28).
우리가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주님을 만족시키기보다 주님께서 나를 만족시켜 주시기를 기대할 때가 많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 하신 주님의 요청처럼(요 4:7), 주님은 우리에게 때로는 자신을 향한 갈망과 순종을 요구하시지만, 우리는 오히려 주님께 "나의 목마름을 채워주십시오, 나의 필요를 해결해 주십시오"라고 조르기 바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주님으로부터만 채움을 받으려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을 쏟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존재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충성, 우리의 헌신, 우리의 사랑입니다. "너희는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라는 말씀은 단순히 입술로 예수님을 말하는 증인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는 삶 전체가 주님을 드러내는 증거가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의 동기가 순수해야 하며, 주님 외에 다른 무언가와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님께 만족을 드리는 삶은 내가 원하는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두시는 자리에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중요한 함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을 위한다는 봉사'입니다. 우리는 종종 봉사를 통해 주님을 섬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며, 드러나는 자리를 좋아할 때가 많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희생하는 삶보다, "주를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서 활동하고 박수받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봉사는 겉으로는 주님을 위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주님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충성을 갉아먹는 위험한 대체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단순히 "무언가를 하라"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만족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싸우는 용병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친히 싸우시는 전쟁 속에서 그분의 도구로 쓰임 받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을 대신해 싸우겠다고 나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손에 온전히 맡겨져 도구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했는가? 아니면 주를 위한다는 이름으로 봉사라는 껍데기에 마음을 두었는가? 주님을 만족시키는 삶은 눈에 보이는 활동이나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 향한 온전한 충성과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마지막까지 주님께 드려지는 삶입니다. 주님이 어디에 두시든 그 자리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묵묵히 주님의 도구로 서 있는 삶이 바로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하는 삶의 참모습입니다. 우리의 눈길이 나의 유익과 만족에서 떠나 오직 주님을 만족시키는 데 머물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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