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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이야기

문제와 은혜 사이에 서 있는 노아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8. 28.

"중요한 결정의 배경에는 더욱 중요한 전제가 숨어 있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늘 어떤 전제를 가지고 접근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성경 속 인물을 "
모범"이나 "교훈"으로 받아들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읽으면 "믿음의 조상"이라는 이름표가 먼저 떠오르고, 노아를 읽으면 "의인 노아"라는 칭호가 먼저 생각납니다. 하지만 이런 전제가 때로는 그 인물들의 연약함과 고통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노아를 떠올려 봅시다. 홍수 이전 그는 "
당대에 완전한 의인"이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홍수 이후의 노아는 달라 보입니다. 방주에서 나와 새로운 땅을 밟았지만, 그에게는 깊은 상처가 남아 있었습니다. 세상은 구원받았지만, 그 세상에는 더 이상 함께 웃던 이웃도, 대화하던 친구도 없었습니다. 구원의 기쁨만큼이나 살아남은 자의 고통과 외로움이 그를 짓눌렀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창 9:20~21). 노아의 취함은 단순한 방탕이었을까요? 어쩌면 그는 포도주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깊은 내적 고통을 안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홍수의 기억, 사라진 사람들의 얼굴, 하나님께 받은 거대한 사명 이후 찾아온 공허함이 술잔을 찾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장면 속에서 우리는 ‘완벽한 의인 노아’가 아니라, 상처 입고 흔들리는 한 인간 노아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장면은 또 다른 질문을 낳습니다. 술에 취해 쓰러진 것은 노아인데, 왜 아들 함이 저주를 받았을까요? 함은 아버지의 허물을 드러냈고, 셈과 야벳은 조심스레 그 허물을 덮어주었습니다. 술에서 깨어난 노아는 함에게 가혹한 저주를 퍼붓습니다. 이 말씀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노아의 저주에 동의하셨을까요? 아니면 인간 가정의 갈등과 상처가 그대로 드러난 장면일까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경이 노아의 가정을 미화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
의인 노아’의 가정에도 갈등이 있었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가정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완벽한 사람이나 이상적인 가정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와 은혜가 함께 얽혀 있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신학자 프레드릭 비크너는 말했습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로 환한 시기뿐 아니라, 그분의 부재로 어두운 시기에 대해서도 정직해야 한다.” 성경은 바로 그런 정직한 기록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기뻐하는 순간도 있지만, 그분의 부재를 느끼며 고통하고 실수하는 순간도 있는 것입니다.

노아의 가정 이야기는 오늘 우리의 가정을 비춥니다. 어떤 가정에도 문제가 있고, 동시에 은혜가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기에 문제를 겪지만,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술에 취해 쓰러진 노아의 연약함 속에서도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를 이어가셨습니다. 우리 가정의 연약함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은혜를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또 우리의 삶을 돌아볼 때, ‘
문제와 은혜’라는 두 개의 안경을 함께 써야 합니다. 문제만 보면 절망하고, 은혜만 보려 하면 현실을 외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두 가지를 함께 볼 때, 비로소 성경은 더 생생하게 다가오고, 우리의 삶도 은혜 안에서 다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노아의 가정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
너희의 삶에도 허물과 갈등이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히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