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간이 주체가 되는 방법을 통해 성서에 접근하고 이해합니다. 설교를 들을 때도 인간이 주체가 되어 듣습니다. 하나님, 성서, 설교의 말씀은 인간의 인식의 대상, 즉 객체가 됩니다.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자기 인식/체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 구조 안에서는, 하나님은 인간의 자기 체험의 범위 안에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인식과 하나님의 체험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을 때, 자신이 주체가 되어 접근합니다. 말씀을 대할 때도 ‘내가 무엇을 느끼는가?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를 중심에 둡니다. 이런 태도는 말씀과 하나님을 단지 내 인식의 대상, 나의 체험 속의 객체로 전락시켜 버립니다. 결국 내가 만든 작은 틀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려 하기에, 그 경험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칼빈은 인간의 마음을 “끊임없이 우상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그 믿음의 대상이 누구인가가 문제일 뿐입니다. 내가 스스로 만든 신을 섬기고 있는가, 아니면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는가. 이 둘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상을 버리고 참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내 마음속의 종교 공장의 전원을 꺼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체가 되셔서 우리에게 오시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 나서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시고 택하시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 안에 거하기 전까지 나의 영혼은 안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참된 안식을 누리기 전, 하나님은 먼저 두려움과 위기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죄 가운데 갇힌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경험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절망과 위기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은혜의 출발점입니다.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서 본 사람은 압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때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라보고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절망과 위기의 끝자락에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인간이 바닥으로 추락할 때, 그 지점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서는 자리입니다. 추락과 동시에 상승이 일어나는 신비, 이것이 복음의 힘입니다.
C.S. 루이스도 이 과정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한때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유신론자가 되었고, 이후 동료 교수 톨킨과의 대화를 통해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추며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으로 들어섰습니다. 루이스가 발견한 진리는 이것이었습니다. 절망이 하나님 없는 곳에서는 냉소와 불신으로 흐르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절망은 오히려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한복음 15:16)
신앙의 주체는 인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우리가 주체가 되어 하나님을 선택한 것 같지만, 실상은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 부르심 안에서 우리는 열매 맺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따라서 참된 믿음은 내가 만든 종교적 체험 속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절망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를 일으키십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붙든 사람은 결코 자기 힘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체험을 쌓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들려 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추락 속에서 은혜를 만나고, 절망 속에서 부활의 빛을 보는 것이 바로 복음의 역설이며, 하나님이 주체가 되시는 믿음의 삶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택한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택함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내 체험이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은혜 위에 서야 합니다. 오직 그 은혜만이 우리를 절망에서 다시 일으키며, 진정한 안식을 누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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