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생애 초기에 이미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혁명운동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그는 사형 선고를 받고, 다른 사형수들과 함께 사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세 명씩 말뚝에 묶인 죄수들 앞에서 총성이 울리려는 바로 그 순간, “집행 중지!”라는 외침이 들렸습니다. 황제의 특별 감형이 내려진 것이었습니다. 눈앞에서 죽음이 닫히고, 동시에 자유가 열린 순간이었습니다.
함께 밧줄에 묶여 있던 이들 중 어떤 이는 그 충격으로 정신을 잃고 평생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했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달랐습니다. 그는 그 죽음의 체험을 “이미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순간”으로 받아들이며, 남은 생애를 문학으로 태우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삶은 선물이다. 매 순간이 축복의 순간일 수 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가를 생각한다. 이제는 매 순간을 붙잡고 살아야 한다.”
그가 이후 쓴 소설들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지하생활자의 수기에는 이 절박한 삶의 체험이 깊게 스며 있습니다. 그의 문학은 단순히 이야기가 아니라, 죽음의 경계에서 건져 올린 삶의 고백이었습니다.
삶은 유한하기에 선물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아침이 밝았다는 사실도, 숨을 쉴 수 있다는 것도 모두 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 쉽게 잊고 삽니다. 사소한 고민, 끝없는 비교, 무의미한 일들에 시간을 흘려보내며 정작 가장 귀한 순간을 놓칩니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만약 대재앙이 곧 닥친다고 안다면 사람들은 삶을 다르게 살 것”이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고백하고, 가고 싶었던 여행을 떠나고, 미뤄두었던 배움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대재앙은 오지 않기에 우리는 다시 일상의 게으름 속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대재앙 같은 위협이 없어도 삶은 이미 유한하다는 사실입니다. 내일이 반드시 보장되지 않았고,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단순한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기만 해도 삶은 전혀 다른 빛깔을 띱니다.
지금 이 순간을 붙잡으십시오.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의 생명이 무엇이냐?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야고보서 4:14). 인생은 길어 보이지만 사실은 한순간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지혜로운 삶은, 먼 훗날 언젠가를 기약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붙잡는 것입니다.
오늘 사랑할 수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사랑하십시오. 감사할 수 있다면 지금 감사하십시오.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다면 오늘 그 자리를 놓치지 마십시오. 도스토예프스키가 깨달았듯, 가장 안타까운 것은 “매 순간을 살지 않은 삶”입니다. 삶은 언젠가 끝이 납니다. 그러나 그 끝을 의식할 때 오히려 삶은 충만해집니다. 죽음을 의식하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더 빛나게 하는 비밀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죽음으로 향하는 길 위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매 순간을 살아 있게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죽음 직전의 순간에 발견한 고백처럼, “삶은 선물이며, 매 순간은 축복”입니다.
오늘 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살아 보십시오. 그러면 어제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이 은혜로 바뀌고, 사소한 일들이 빛나며, 사랑이 더욱 깊어집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가장 창조적인 행위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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