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성경 속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건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한 심판 이야기가 아니라, 심판 속에서도 빛나는 하나님의 은혜, 즉 덮어주시는 은혜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창세기 9장은 그 결론 부분을 담고 있는데,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 그리고 무지개로 세우신 언약,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노아의 만취 사건까지 이어집니다. 얼핏 보기엔 조금 어색하고 심지어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결말 같지만, 사실은 복음의 핵심을 보여주는 깊은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홍수 이후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자손들에게 다시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무지개를 보여주시며 다시는 홍수로 온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언약은 단순히 자연현상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닙니다. 마치 신랑이 신부를 옷자락으로 덮어주듯, 하나님께서 은혜로 당신의 백성을 품으시고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성경 속에서 혼인 언약은 언제나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사랑과 연합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당신의 처소로 삼으시고, 또 친히 그들의 처소가 되어 함께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무지개는 바로 그 은혜 언약의 눈에 보이는 표징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깔끔하게 끝나지 않습니다. 무지개 언약 뒤에 곧바로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고 누워 있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왜 이런 장면이 결론부에 있을까요? 그것은 인간의 실상을 다시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홍수라는 무서운 심판을 직접 경험하고도, 인간은 여전히 이전 세대와 다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만취 사건은 “인간은 어떤 경고나 협박으로도 스스로 변할 수 없는 완전한 타락의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은혜가 아니면 설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의 아들 함은 아버지의 수치를 보았을 때 그것을 조롱하며 형제들에게 알렸습니다. 성경 원어에 따르면 단순히 “본 것”이 아니라, 즐기며 말하고 누설했다는 뜻이 있습니다. 반면 셈과 야벳은 뒷걸음질 치며 아버지의 벗은 몸을 덮어 주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메시지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란 바로 “덮어주심”입니다. 죄인을 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가려주고, 덮어주어 하나님의 눈에 의롭게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시편 32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여기서 “가리움”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옷으로 가린다는 뜻을 넘어, “죄를 용서하다”라는 의미까지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셈과 야벳의 행동은 곧 은혜의 그림자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덮으시는 은혜를 미리 보여주는 사건인 것입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하나님이 죄인의 수치를 덮어주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무죄한 짐승의 가죽옷으로 덮어주셨습니다. 출애굽 때에는 어린양의 피가 집 문설주에 발라져 죽음의 사자가 넘어가게 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바위 틈에 두고 당신의 손으로 덮으셔서 죽지 않게 하셨습니다. 성막에서는 법궤 위를 덮는 시은좌(속죄소)가 있었습니다. 그 위에 흘려진 제물의 피가 인간의 죄와 실패를 가리고, 은혜의 자리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모든 사건은 결국 십자가에서 완성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덮어주시고, 하나님은 이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운 자로 보십니다. 그러므로 방주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방주 안에 있던 자들이 비의 심판으로부터 덮임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보호받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노력과 의를 “더러운 옷”이라고 말합니다.(사 64:6)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옷으로는 우리 자신을 가릴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이 지어주신 의의 흰옷,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덮여야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바로 이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무지개는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성경 속 무지개는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심판을 멈추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표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연약하고, 때로는 노아처럼 넘어지고, 함처럼 남의 죄를 드러내며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셈과 야벳의 모습, 곧 덮어주는 은혜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오늘도 우리를 덮고 계십니다. 우리가 더러운 옷을 벗고 그분이 주시는 흰옷을 입을 때, 하나님의 진노는 멈추고 우리는 무지개 언약 아래에 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내가 무엇을 성취했느냐가 아니라, 은혜로 덮임을 받았느냐의 문제입니다. 방주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무지개는 은혜 언약의 표징이며, 십자가는 그 모든 은혜의 완성입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그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로마서 4:7~8, 시편 32:1~2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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