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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챙김

중요한 것은 삶을 사랑하는 것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17.

삶을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가장 멀게 느껴질 때는, 삶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남겨 주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입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 소중히 쥐고 있던 모든 것이 불에 타 종잇조각처럼 손에서 흩어져 버릴 때, 남은 것은 검게 그을린 재뿐이고 그 재가 목을 막아 숨조차 쉬기 힘들 그때 삶을 사랑하라는 말은 너무 잔인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바로 그때, 삶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슬픔은 조용히 찾아오지 않습니다. 어느 날 문득, 우리의 옆자리에 털썩 앉아 버립니다. 마치 열대의 한낮처럼 숨이 막히게 덥고, 공기는 물처럼 무거워져 폐로 숨 쉬는 대신 아가미가 필요할 것만 같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몸은 가라앉고, 마음은 계속해서 아래로 끌려갑니다. 그 슬픔은 손님처럼 잠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우리의 일부가 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슬픔이 몸의 일부가 되었을 때, 우리는 묻게 됩니다. ‘이걸 내가 어떻게 견뎌 내지?’ ‘내 한 몸으로 이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 질문 앞에서 삶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반짝이는 미소도, 우리를 유혹하는 눈빛도 없습니다. 그저 평범하고, 지쳐 있고, 때로는 초라한 얼굴로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그래도 그 순간, 우리는 두 손으로 얼굴을 움켜쥐듯 삶을 붙잡습니다. 붙잡을 힘조차 없다고 느끼면서도, 본능처럼 삶을 놓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거의 속삭이듯 말합니다. “그래, 너를 받아들일게.” “다시 너를 사랑해 볼게.” 이 고백은 용감해서가 아닙니다. 긍정적이어서도, 강해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는 자리에서 나오는 가장 연약한 결단입니다. 삶을 사랑하겠다는 말은, 고통을 부정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슬픔을 밀어내겠다는 선언도 아닙니다. 그저 슬픔과 함께 앉아 있으면서도, 삶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겠다는 작은 약속인 것입니다.

신앙의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종종 삶이 무너질 때 믿음마저 놓아야 할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믿음은 고통이 사라진 뒤에만 붙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통 한가운데서,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는 침묵 속에서, 여전히 삶을 사랑해 보겠다고 말하는 그 태도 안에 믿음은 숨 쉬고 있습니다.

삶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것이 괜찮다고 말하는 일이 아닙니다. 삶을 사랑하는 것은, 지금 이 삶이 아프고 무겁고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손을 내미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삶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 타버린 자리에서도, 슬픔이 몸을 눌러 숨이 막힐 때에도, 우리는 다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하겠다.” 그 고백 하나로 삶은 다시 완벽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고백 덕분에, 우리는 오늘을 건너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면, 오늘은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