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린도전서 11:3)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머리를 덮는 것이나 안수는 다소 낯설고 형식적인 교회 관습처럼 느껴집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문화적 산물로 보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굳이 지킬 필요 없는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두 행위를 단순한 외적 예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영적 실재를 드러내는 깊은 계시적 행동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머리를 덮는 것과 안수는, 인간이 만들어 낸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 질서와 생명의 교통을 눈에 보이게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머리를 덮는 것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 머무는 삶입니다. 머리를 덮는다는 것은 단순히 천이나 모자를 쓰는 행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누가 나의 머리인가를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각 남자의 머리요”(고전 11:3) 머리를 덮는 행위는, 내가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존재가 아니라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통치와 질서 아래 있는 자임을 인정하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 이는 자기 주장과 자기 주권을 내려놓는 행위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교회 안에서 어떤 사역을 맡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열심도 있고 능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결정은 늘 “내가 보기엔 이게 맞다”에서 출발합니다. 말씀보다 경험이 앞서고, 공동체의 분별보다 자신의 확신이 앞섭니다. 겉으로는 헌신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머리를 드러낸 자아가 살아 있습니다.
반대로 머리를 덮은 사람은 다릅니다. 그는 먼저 묻습니다. “주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는 기다립니다. 말씀과 공동체 안에서 확인될 때까지 멈춥니다. 그의 침묵은 소극성이 아니라 권위에 대한 순종입니다. 머리를 덮는다는 것은 결국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는 주인이 아닙니다. 나는 지체입니다.” “나는 머리가 아니라,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 자입니다.”
안수는 성경에서 매우 자주 등장합니다. 안수는 단순한 축복 행위나 직분 임명의 절차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안수는 ‘동일시의 행동’입니다. 구약에서 제물을 드릴 때, 제물 위에 안수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것은 “이 제물이 곧 나입니다”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제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행위였습니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수는 단순히 “기도해 주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 있는 것을 서로 나누는 실제적인 행위입니다. 즉, 안수는 “당신과 내가 하나의 몸임을 인정한다”는 선언입니다.
예를 들어, 한 성도가 깊은 고난의 시간을 지나며 하나님 앞에서 깨어지고, 자신의 무능과 죄성을 철저히 보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를 위해 장로들이 안수하며 기도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손의 위치나 기도의 문장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동일시입니다. 안수하는 자는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아픔은 나의 아픔입니다.” “당신이 겪은 십자가의 자리에서 나온 생명이 우리 몸 전체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참된 안수는 은사를 ‘주는 행위’가 아니라, 이미 몸 안에 있는 생명이 흘러가게 하는 통로입니다. 은사는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몸 전체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머리를 덮는 것과 안수는 권위와 생명의 흐름입니다. 이 두 행위는 서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머리를 덮지 않은 자는 참된 안수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자기 자신이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머리를 덮은 자만이 참된 안수를 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며, 오직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몸 안에서 역사하시도록 자신을 낮춘 자만이 생명의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병들 때는 언제입니까? 형식은 남아 있지만, 머리는 드러나 있고 안수는 행해지지만, 생명의 교통은 없는 때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살아 있을 때는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각 지체가 머리를 덮고 있고, 안수를 통해 서로의 삶과 십자가와 은혜가 실제로 나누어집니다.
머리를 덮는 것과 안수는 외형적인 종교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영적 실재를 눈에 보이게 고백하는 행동입니다. 머리를 덮는 것은 “주님, 당신이 나의 머리이십니다.” 안수는 “주님, 우리는 한 몸입니다.” 이 고백이 사라질 때, 교회는 종교 집단이 됩니다. 그러나 이 고백이 살아 있을 때, 교회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 땅에 존재합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머리는 덮여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드러나 있습니까. 안수는 형식입니까, 아니면 동일시의 실제입니까. 이 질문 앞에 잠시 멈추어 서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머리를 덮는 첫걸음일지도 모릅니다.
“네 속에 있는 은사는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이니 이것을 멸시하지 말며”(디모데전서 4:14)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로마서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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