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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중요한 성경적인 가르침 - 직임과 은사의 차이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28.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자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에베소서 4:11~12)

교회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이렇게 묻습니다.
“저 사람은 어떤 직분을 가졌는가?” 장로인가, 집사인가, 목사인가, 그러나 성경은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저 사람에게 하나님이 어떤 은사를 주셨는가?” 우리는 이 지점에서 성경이 말하는 직임과 은사의 분명한 구별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구별을 놓치면 교회는 제도가 되고, 이 구별을 붙들면 교회는 생명이 됩키다.

빌립보서 1장 1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여기서 감독(장로)과 집사는 특정 지역 교회 안에서 세워진 직임입니다. 즉, 이 직임은 지역 교회에 속한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장로는 빌립보 교회의 장로이지, 에베소 교회의 장로가 아닙니다.

반면 에베소서 4장 11절은 전혀 다른 그림을 보여줍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ㅊ목자와 교사로 주셨으니” 여기에는 “어느 교회의”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 전체, 곧 우주적인 교회를 향해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직임은 지역 교회를 위한 것이고,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위한 것입니다.

직임은
‘맡겨지는 것’이고, 은사는 ‘주어지는 것’입니다. 직임은 공동체 안에서 분별과 인정을 통해 맡겨집니다. 장로와 집사는 성품, 삶, 신앙의 성숙을 보고 교회가 세웁니다. 그래서 직임은 책임과 관리의 성격이 강합니다. 반면 은사는 인간이 세우지 않습니다. 은사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복음 전하는 자는 어느 날 회의를 통해 선출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입니다. 목자와 교사는 누군가 임명해서 만들어지는 직업이 아닙니다. 성도를 돌보고 말씀을 가르치지 않으면 마음이 타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어느 교회에 집사 직분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나누는 데 전혀 부담이 없고, 어디서든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합니다. 반대로 공식적인 직분은 없지만, 성도들이 그 사람의 말 한마디에 위로를 받고, 믿음이 자랍니다. 이때 성경은 묻습니다.
“누가 은사를 받은 자인가?”

직임은 교회를
‘지키는 역할’이고, 은사는 교회를 ‘자라게 하는 역할’입니다. 장로와 집사는 교회의 질서를 지킵니다.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감독하고,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돌봅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질서가 없으면 교회는 혼란에 빠집니다. 그러나 교회를 자라게 하는 힘은 은사에서 나옵니다.

에베소서 4장은 은사의 목적을 분명히 말합니다.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교회가 성숙해지는 것은 행정이 잘 돌아가서가 아니라, 말씀이 살아 움직이고, 복음이 흘러가고, 성도들이 자라기 때문입니다.

마치 집을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직임은 집의 기둥과 구조물입니다. 은사는 그 안에 흐르는 공기와 생명입니다. 기둥만 있고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집이 아닙니다. 생명이 흐르지 않는 교회는 조직일 뿐입니다.

직임은 한 교회에 머물지만, 은사는 경계를 넘습니다. 장로는 다른 교회에 가서
“내가 여기 장로입니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직임은 그가 속한 교회에 한정됩니다. 그러나 은사는 다릅니다. 복음 전하는 자는 어디를 가든 복음을 전합니다. 목자적인 은사는 교회 울타리를 넘어 사람을 돌봅니다. 교사의 은사는 장소가 바뀌어도 말씀을 풀어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여러 교회를 다니며 사역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권위는 직임이 아니라 은사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단, 직분, 명함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통해 실제로 무엇이 흘러나오느냐입니다.

문제는 직임이 은사를 대신할 때 생깁니다. 직분은 있는데 말씀의 생명이 없습니다. 자리는 있는데 복음의 능력이 없습니다. 직함은 크지만 성도를 살리는 힘이 없습니다. 그 순간 교회는 살아 있는 몸이 아니라 기관이 됩니다. 교회는 직임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사로 자라나는 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는가? 이전에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은사를 주셨는가? 직임은 언젠가 내려놓게 됩니다. 그러나 은사는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사용하게 됩니다. 교회가 다시 살아나려면
‘누가 위에 있느냐’를 묻기보다 ‘무엇이 흘러가고 있느냐’를 물어야 합니다. 직임은 교회를 보호하지만, 은사는 교회를 살립니다. 그리고 참된 교회는 질서와 생명이 함께 숨 쉬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