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로마서 6:4)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우리가 한 떡에 참여함으로 한 몸이니라”(고린도전서 10:16~17)
교회 안에는 ‘행하는 예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단순한 의식이나 종교적 절차로 말하지 않습니다. 세례와 성찬은 사람이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이미 무엇이 끝났고 무엇이 시작되었는가를 증언하는 표지이기 때문입니다. 세례와 성찬은 단순한 교회 전통이나 형식으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복음이 인간 안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의 외적 증언입니다. 이 두 예식은 믿는 자의 삶을 둘로 가릅니다. 세례는 ‘옛 사람의 끝’을 선언하고, 성찬은 ‘새 생명 안에서의 계속되는 교통’을 증언합니다.
자신에게 합당한 세례의 방식은 물에 잠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형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례는 상징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미 이루어진 영적 사실을 눈으로 보이게 드러내는 상징입니다. 물을 살짝 적시는 것은 ‘변화’를 상징할 수는 있어도 ‘죽음과 장사’를 충분히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물속에 온전히 잠겼다가 다시 나오는 행위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나는 이미 끝났다. 이전의 삶은 더 이상 계속되지 않는다.” 마치 장례식과 같습니다. 장례식은 죽음을 만들지 않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을 세상 앞에서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자리입니다.
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는 죄를 씻기 위한 인간의 행위가 아닙니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을 세상과 교회 앞에서 간증하는 선언입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오랜 직장을 떠나 새로운 나라로 이민을 간다고 합시다. 그는 이전의 주소를 정리하고, 주민등록을 말소하며, 출입국 심사를 통과합니다. 그 절차가 그를 다른 나라의 시민으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결정된 이민의 사실을 공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세례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세상에 속했던 옛 삶은 끝났고, 이제 나는 주님과 그분의 몸에 속했다는 경계선의 통과인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는 개인적인 감정 표현이 아니라, 신분의 전환에 대한 공개적인 증언입니다. 더 이상 ‘내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속한 삶으로 옮겨졌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세례가 한 번의 사건이라면, 성찬은 반복되는 삶입니다. 세례가 ‘끝’을 말한다면, 성찬은 ‘계속’을 말합니다. 성찬은 흔히 ‘기념식’으로 오해됩니다. 물론 성경은 “나를 기념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기념은 단순한 추억 회상이 아닙니다. 성경적인 기념은 현재 속에서 유효한 관계를 확인하는 행위입니다. 부부의 결혼기념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날은 과거의 결혼식을 다시 재현하는 날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지금도 같은 언약 안에 있다”는 사실을 현재적으로 확인하는 날입니다.
성찬도 그렇습니다. 떡을 떼고 잔을 나누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과거형으로 회상하는 의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도 유효한 사실, 곧 우리가 그분의 몸 안에 있고, 서로가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증언하는 행위입니다. 성잔을 개인 경건의 수단으로 축소시키지 마십시오. 성찬은 반드시 몸의 교통을 전제로 합니다. 혼자 떡을 먹는 행위는 성찬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찬은 “나와 주님”의 문제를 넘어서 “주님 안에서 우리가 하나”라는 사실을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렇게 경고합니다. 주님의 몸을 분별하지 못한 채 떡과 잔을 먹는 것은 오히려 죄가 된다고 말합니다.
이 두 예식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세례 없이 성찬에 참여하려는 것은, 끝나지 않은 삶을 안고 교통에 들어오려는 것입니다. 반대로 세례를 받았지만 성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끝났다고 고백한 삶을 공동체적 교통 속에서 살아내지 않는 것입니다.
세례는 나 혼자의 선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교회 앞에서 행해집니다. 성찬은 공동체의 행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 사람이 자기 자신을 살피며 참여합니다. 이 둘은 개인과 공동체, 죽음과 생명, 단번의 사건과 지속적인 삶을 연결합니다. 세례는 말합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다.” 성찬은 다시 말합니다. “그리고 나는 홀로 살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세례와 성찬은 너무 쉽게, 너무 익숙하게 지나갑니다. 그러나 언제나 하나입니다. 형식이 아니라 실재입니다. 물이 깊었느냐 얕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말로 옛 사람이 끝났는가입니다. 떡과 잔을 얼마나 경건하게 들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말로 주님의 몸 안에서 성도들과 하나로 살고 있는가입니다.
세례와 성찬은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데려가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삶으로 증언하게 만드는 표지입니다. 이 두 예식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정말로 끝났는가? 그리고 지금, 나는 누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이 살아 있는 한, 세례와 성찬은 결코 낡은 의식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늘도 여전히, 복음이 실제라는 증거로 우리 가운데 서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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