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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중요한 성경적인 가르침 - 신유는 몸을 고치는 사건이 아니라 생명이 드러나는 자리이다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29.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12:9)

성경이 말하는 신유는 오늘날 흔히 말하는
‘기적 체험’이나 ‘능력의 과시’와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병이 낫느냐, 낫지 않느냐에 있지만, 오히려 성경은 이렇게 묻습니다. “이 고통의 자리에서 생명은 누구의 것입니까?” 많은 사람에게 신유는 문제 해결입니다. 아픈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고통이 사라지고, 일상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은 하나님께서 실제로 병을 고치시는 분임을 분명히 증거합니다. 그러나 신유는 사람을 생명 안에서 세우는 하나님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신유는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가 아니라, 안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질서 변화이기도 합니다.

한 그리스도인이 오랜 지병으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 병이 찾아왔을 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금식했고, 안수기도를 받았고, 신유 집회도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그의 기도의 초점은 분명했습니다.
“주님, 낫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병은 쉽게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의 기도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실망과 원망이 섞였고, 나중에는 체념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조용히 이런 고백을 하게 됩니다.
“주님, 병이 낫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이 병 때문에 주님을 잃고 싶지는 않습니다.” 병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사람의 의지와 소유권이 바뀌는 순간, 생명이 다른 자리에 서게 됩니다. 이전에는 ‘내 몸’, ‘내 삶’, ‘내 계획’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주님의 생명’이 중심이 됩니다. 이때 신유는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설령 육체의 상태가 즉각 변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신유를 결코 십자가 없는 축복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병과 연약함이 십자가를 실제화하는 통로가 됩니다. 많은 사람은 고난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고난을 제거하는 하나님보다, 고난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더 많이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세 번이나 제거해 달라고 간구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 말씀은 신유의 부정이 아니라, 더 깊은 신유의 선언이었습니다. 바울은 가시가 제거되지 않았지만, 자기를 붙들고 있던 힘이 꺾였습니다. 그 순간 그는 병보다 더 치명적인 것을 치유받았습니다. 바로 ‘스스로 충분하다고 여기는 자아’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유 이해는
‘밖에서 안으로’ 작동합니다. 환경이 바뀌면 믿음이 살아나고, 문제가 해결되면 감사가 생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은 안에서 밖으로 흐릅니다. 어떤 사람은 병이 나은 뒤에 하나님을 떠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병이 남아 있음에도 하나님 안에 더 깊이 뿌리내립니다. 이 차이는 병의 유무가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신유는 은사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입니다. 은사는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질 수 있지만, 생명은 사람 전체를 다시 배열합니다. 생각의 중심, 감정의 방향, 삶의 우선순위가 바뀝니다. 그래서 신유를 체험한 사람보다, 신유를 통해 생명이 다뤄진 사람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됩니다.

신유는 결국
“주님이 내 안에 사시는가”의 문제입니다. 신유를 구하는 많은 기도는 사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 제 삶을 다시 제게 돌려주십시오.” 그러나 신유 이해는 이렇게 고백하게 만듭니다. “주님, 이 삶은 본래부터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고백이 일어나는 자리에서 비로소 참된 신유가 시작됩니다. 때로는 육체가 회복되고, 때로는 회복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그 사람은 더 이상 이전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병 중심의 사람이 아니라, 생명 중심의 사람이 됩니다.

신유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생명인가, 아니면 고통 없는 삶인가?” 신유는 고통을 없애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신유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시 자기 생명 안에 세우시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참된 신유는 눈에 띄는 간증보다, 오래 지속되는 순종으로 드러납니다.

오늘 우리의 몸과 삶이 어떤 상태에 있든지, 이 한 가지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생명은 내 안에서 자유롭게 일하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 정직해질 때, 우리는 이미 신유의 문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