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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말씀 묵상

지도자 권위와 신앙적 순종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27.

"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대저 그들의 재앙은 속히 임하리라 이 두자의 멸망을 누가 알랴"(잠언 24:21~22)

1976년 9월, 마오쩌둥이 사망했을 때 세계는 숨을 죽이고 중국을 주시했습니다. 많은 이들은 덩샤오핑이 마침내 복수의 칼을 빼어 들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에게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문화대혁명의 광풍 속에서 그는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자"로 낙인 찍혀 두 차례나 실각했고, 강제 노동의 굴욕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참기 어려운 것은 아들의 일이었습니다. 홍위병들에게 끌려가 박해를 받던 그의 장남은 건물 위에서 추락한 뒤 평생 척추 장애인으로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몸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로서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에 피멍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권력을 되찾은 덩샤오핑은 놀라운 선택을 했습니다. 그는 마오쩌둥에 대한 개인적 복수를 포기했습니다. 오히려 마오의 권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공이 칠 할, 과가 삼 할"이라는 유명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원한을 앞세우는 대신 국가의 미래와 인민의 단결을 앞세운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단순히 정치적 계산으로 읽었지만, 거기에는 더 깊은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이미 죽은 자에 대한 복수는 나라를 두 쪽 낼 뿐이며, 과거에 묶인 채로는 미래를 열 수 없다는 통찰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또 다른 장면이 있습니다. 수천 년 전, 유대 광야의 엔게디 동굴입니다. 다윗은 쫓기는 신세였습니다. 한때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온 이스라엘의 환호를 받았던 그가, 이제는 사울 왕의 칼을 피해 황야를 떠돌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이미 이성을 잃었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왕좌를 빼앗을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수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다윗을 추격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윗을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한 제사장 팔십오 명이 학살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운명처럼 사울이 홀로 동굴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바로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숨어 있던 그 동굴이었습니다. 부하들은 속삭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손만 뻗으면 그 모든 고난이 끝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몰래 다가가 사울의 겉옷 자락을 잘라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행동조차 다윗의 마음을 찔렀습니다. 그는 부하들을 제지하고 사울을 살려 보냈습니다.

동굴을 나온 뒤 다윗은 사울을 향해 외쳤습니다.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왕은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에게 사울은 단지 자신을 핍박하는 폭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세자였습니다. 그 권세에 손대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손대는 것이라고 그는 믿었습니다. 이 두 장면은 시대도 다르고 배경도 전혀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된 진실을 가리킵니다. 권세는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잠언은 말합니다.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그들의 재앙은 속히 임하리라." 이 말씀은 단순히 정치적 순응을 명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훨씬 더 근본적인 질서에 대한 선언입니다. 선한 통치자든 악한 통치자든, 권세의 자리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권세를 함부로 뒤엎으려는 시도는 결국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 됩니다. 물론 이것이 불의한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윗도 사울의 살인 명령을 피해 도망쳤습니다. 덩샤오핑도 마오의 부당한 숙청에 저항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개인적인 복수와 권세 자체를 향한 반역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었습니다. 억울함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최후의 심판을 인간의 손이 아닌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도 크고 작은 권세들이 있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가 있고, 회사를 이끄는 상사가 있고, 가정을 세우는 부모가 있습니다. 그 권세들이 항상 공정하거나 지혜롭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다윗처럼, 때로는 덩샤오핑처럼, 우리는 부당하다고 느끼는 권세 아래서 억울함을 삼켜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를 지우는 것이 아닙니다. 분노를 올바른 곳에 두는 것입니다. 다윗은 동굴 속에서 시편을 썼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고, 탄식하고,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공의를 신뢰했습니다. 덩샤오핑은 개인의 원한 대신 미래 세대를 위한 개혁을 선택했습니다. 권세를 경외한다는 것은 결국, 그 권세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의 모든 권세 위에서, 당신의 때와 방법으로 공의를 이루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