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잠언 25:13)
여름 한낮의 들판을 생각해 보십시오. 허리를 굽혀 낫을 휘두르는 일꾼들의 등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햇볕은 쉼 없이 내리쮭니다. 그 뜨거운 노동의 한가운데, 누군가 차가운 냉수 한 그릇을 들고 나타납니다. 물은 단순히 갈증을 해소하는 액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수고를 알아준다는 신호이고, 아직 이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격려이며, 돌아갈 집이 있다는 약속입니다.
솔로몬이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라고 말했을 때, 그는 단순한 청량감을 묘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지친 주인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는 충성된 사자의 존재를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워털루 전투의 포연이 걷히던 어느 날 오후, 웰링턴 장군 앞에 두 병사가 섰습니다. 둘 다 적의 토치카에 접근해 폭탄을 투척하는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온 용사들이었습니다. 한 병사는 태연자약했습니다.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고 자세는 반듯했습니다. 그는 마치 훈련장을 다녀온 사람처럼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병사는 달랐습니다. 얼굴이 창백했고 두 손이 미세하게 떨렸으며, 입술을 움직이려 해도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침착한 병사에게 쏠렸습니다. 그러나 웰링턴은 달랐습니다. 장군은 떨고 있는 병사를 손으로 가리키며 천천히 말했습니다. "저 사나이야말로 진정한 용사다. 저 병사는 두려움을 느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갔다. 명령을 받들기 위해, 자기에게 부여된 사명을 위해, 그 두려움을 등에 지고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저런 병사가 있는 한, 이 전쟁의 최후 승리는 영국의 것이라 확신한다."
태연한 병사의 용기는 어쩌면 천성이었을지 모릅니다.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용기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떨리는 무릎을 억지로 세우고, 온몸의 본능이 "돌아가라"고 외치는 그 순간에도 앞으로 나아간 병사, 그가 진정으로 충성된 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감정보다 자신을 보낸 이의 뜻을 더 크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자의 임무는 단 하나입니다. 자신을 보낸 주인의 뜻을 온전히 전하는 것입니다. 사자는 자신의 생각을 보태거나, 자신의 감정을 첨부하거나, 자신의 판단으로 주인의 말을 걸러서는 안 됩니다. 그는 통로여야 합니다. 투명한 통로 말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살아본 사람이라면 압니다. 우리는 늘 주인의 말에 자신의 해석을 끼워 넣고 싶어 합니다.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자신의 인상을 남기고 싶어 합니다. 때로는 주인의 뜻이 자신에게 불편할 때, 그 불편함을 이유로 충성의 범위를 스스로 좁혀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말한 "충성된 사자"는 그런 자가 아닙니다. 그는 주인이 전하라 한 것을 편하든 불편하든, 두렵든 담대하든, 그대로 전하는 자입니다.
한국 교회 초창기,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 젊은 전도인이 복음을 들고 찾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 마을은 유교적 전통이 강하고 외지인에게 배타적인 곳이었습니다. 전도인은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고, 아이들은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어느 날 밤, 그는 낡은 여인숙 방 한 구석에 앉아 무릎을 껴안은 채 떨었습니다. 두렵고 외로웠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다시 그 마을 골목을 걸었습니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몇 달이 지나고,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그 말씀, 한 번 더 들어봐도 되겠소?" 그 한 사람이 씨앗이 되어, 훗날 그 마을에는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 전도인은 결코 두려움이 없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두려움을 알면서도 나아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충성이 한 공동체를 바꾸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거창한 직함이나 제도적 직분이 없어도 그렇습니다. 이웃에게 건네는 한마디 말, 무너진 친구 곁에 말없이 앉아 있어 주는 시간, 불의한 자리에서 혼자 고개를 젓는 작은 행동, 이 모든 것이 사자의 임무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곳에서, 하나님이 전하라 하신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 충성이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한다고, 성경은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다"고 말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당신의 피조물의 충성으로 인해 마음이 시원해지신다는 이 표현 앞에서, 우리는 잠시 멈추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충성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떨면서도 나아가는 그 발걸음을, 그 무릎이 후들거리는 순간의 선택을, 하늘에서 바라보고 계십니다.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것이 용기가 아닙니다. 두려움을 알면서도 보내신 이의 뜻을 따라 한 발을 내딛는 것, 그것이 충성입니다. 그리고 그 충성은 뜨겁고 지친 여름 들판 한가운데의 얼음 냉수처럼, 하나님의 마음 깊은 곳을 시원하게 적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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