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꿀을 보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함으로 토할까 두려우니라"(잠언 25:16)
어느 해변에 한 부자가 서 있었습니다. 저 건너편은 천국이었고, 천사는 그에게 낡은 뗏목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이것으로 건너가야 합니다. 하지만 조심하십시오. 짐이 너무 무거우면 가라앉습니다." 부자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은 이미 금궤를 향해 뻗고 있었습니다. 돈 자루, 보석, 골동품, 미술품, 음식 꾸러미까지. 뗏목은 점점 물속으로 잠겨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파도 한 번에 모든 것이 수면 아래로 사라졌습니다.
이 짧은 이야기가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 부자가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우리를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은 말합니다. "너는 꿀을 보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함으로 토할까 두려우니라"(잠 25:16). 꿀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달고, 몸에도 좋습니다. 성경은 꿀을 먹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과식을 경고합니다. 좋은 것을 좋은 만큼 누리는 것, 그것이 지혜입니다. 좋은 것이기에 더욱더 쌓아두려는 것이 탐욕입니다.
문제는 그 경계가 생각보다 훨씬 흐릿하다는 데 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그의 책에서 이런 흥미로운 현상을 소개합니다. 슈퍼마켓에서 잼 샘플을 진열할 때, 종류가 6가지일 때보다 24가지일 때 오히려 구매율이 크게 떨어졌다는 실험입니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사람들은 더 행복해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불안해지고 결국 아무것도 고르지 못한 채 돌아섰습니다. 더 많은 것이 반드시 더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역설은 물질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얻을수록 더 지혜로워져야 하는데,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집니다. 더 많은 인맥을 쌓을수록 더 풍요로워져야 하는데, 정작 깊이 이야기 나눌 친구가 없다고 느낍니다. 더 많은 시간을 아끼려 할수록, 정작 여유는 사라집니다. 어느 순간 우리는 채우기 위해 달리고 있는지, 아니면 달리기 위해 채우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됩니다.
한 수도사가 젊은 수련자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그릇이 가득 차 있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수련자는 당연하다는 듯 답했습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담을 수 없겠지요." 수도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그래. 가득 찬 그릇에는 새 것이 들어올 자리가 없지." 이 말은 단순한 교훈처럼 들리지만, 삶의 중심부를 건드립니다.
탐욕이 무서운 것은 우리를 비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더 가지려 할수록, 더 가져야 한다는 불안이 그 자리를 채웁니다. 처음에는 꿀을 맛보려 했지만, 어느새 꿀단지를 소유하려 하고, 그 다음엔 꿀벌 전체를 지배하려 합니다. 그 끝에 남는 것은 풍요가 아니라 공허입니다.
절도(節度)라는 한자 낱말이 묘합니다. 마디 절(節), 법도 도(度). 마디가 있어야 자란다는 뜻입니다. 대나무가 그렇습니다. 대나무가 곧고 높이 자랄 수 있는 것은 중간중간 단단한 마디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디 없이 그저 무한정 뻗어나가는 줄기는 바람 한 번에 꺾이고 맙니다. 절제는 성장을 막는 것이 아니라, 성장을 견디게 하는 힘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에서 만나를 주시면서 하루치만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더 많이 거두어 쌓아두면 썩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규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려던 삶의 리듬이었습니다. 오늘 주신 것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 내일 것까지 오늘 움켜쥐려 하지 않는 것, 그 믿음이 곧 자유였습니다.
족하다는 것은 포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분별입니다. 꿀을 앞에 두고 한 숟가락 떠서 그 달콤함을 온전히 느끼며 내려놓는 사람은, 꿀단지를 통째로 들이켜다 쓰러진 사람보다 꿀을 훨씬 더 잘 누린 것입니다. 뗏목은 처음부터 건너편까지 갈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뗏목이 아니었습니다. 내려놓지 못한 짐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이미 충분합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실으려 할 때, 가라앉는 것입니다. 꿀을 보거든, 족하리만큼 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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