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잠언 24:17)
런던의 어느 오후, 스펄전이 강단에 섰습니다. 청중은 숨을 죽이고 그의 입술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날의 본문은 사도행전의 스데반입니다. 믿음 때문에 돌에 맞아 죽은 최초의 순교자 이야기였습니다.
설교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뒤쪽에서 한 남자가 손을 들었습니다. 신자가 아닌 듯 보이는 그는 거침없이 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도대체 무얼 하고 계셨습니까?" 예배당 안이 싸늘해졌습니다. 질문의 날은 날카로웠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왜 돌을 막지 않으셨는가? 왜 그 충성스러운 종을 피신시키지 않으셨는가? 침묵이 길어질수록 그 질문은 더욱 무겁게 공중에 떠돌았습니다.
그러나 스펄전은 잠시 후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하나님은 스데반으로 하여금 기도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시옵소서'라고 말입니다." 이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우리는 한 가지 질문 앞에 멈추게 됩니다. 만약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나는 무엇을 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마 돌을 피하면서 저주를 내뱉었을 것입니다. 혹은 살아남은 뒤에 조용히 복수를 계획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우리는 나를 해친 사람이 잘못되기를 바라고, 막상 그가 잘못되는 날에는 속으로 쾌재를 부릅니다. 잠언은 바로 그 순간을 가리켜 말합니다.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몇 해 전, 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신뢰했던 동료에게 배신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동료는 그가 건넨 말을 왜곡해 윗사람에게 전했고, 덕분에 그는 중요한 자리에서 밀려났습니다. 분노와 억울함이 뒤엉켜 몇 달을 보냈습니다.
그로부터 1년쯤 지났을 무렵, 그 동료가 스스로의 거짓말에 발목이 잡혀 신뢰를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그 소식을 듣는 순간, 가슴 한 켠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 봐. 결국 이렇게 되는 거야." 입꼬리가 스스로 올라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순간, 그는 묘하게도 불편해졌습니다. 기쁨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씁쓸한 감정이었습니다. 마치 상한 음식을 먹었을 때처럼, 삼키고 나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는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그는 그날 밤 오래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동료를 넘어뜨리신 것이라면, 그것은 그의 원한을 풀어주시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혹시, 그 역시 언젠가 같은 방식으로 넘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아닐까?
잠언이 말하는 핵심은 사실 원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선악을 판단하십니다. 그분의 저울은 내 편을 들지 않습니다. 그분은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벌하실 수 있지만, 같은 기준으로 나를 향해서도 저울을 드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수가 넘어지는 순간은 내가 환호할 때가 아니라, 조용히 나 자신을 들여다볼 때입니다. 나에게는 저와 같이 징계받을 요소가 없는가?
스데반은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을 향해 저주 대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것은 체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신뢰하기에 내 손으로 복수의 돌을 들 필요가 없다는 확신에서 나온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날 스데반의 처형 현장에서 옷을 지키고 서 있던 청년 사울은 훗날 가장 위대한 사도 바울이 됩니다. 스데반의 기도가 응답된 것입니다.그것도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원수가 잘못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된 나,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나의 습성입니다. 성숙한 신앙은 그 순간에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니라,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돌밭에서도 기도할 수 있었던 스데반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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