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잠언 24:14)
어느 양봉가가 들려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벌들은 놀랍게도 농약이 뿌려진 꽃과 그렇지 않은 꽃을 구분한다고 합니다. 화학비료로 억지로 키워진 화려한 꽃밭을 지나쳐, 유기질 비료로 정성껏 자란 소박한 꽃들을 찾아갑니다. 심지어 담벼락 아래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손톱만 한 잡초의 꽃까지도 그들의 여정에 포함됩니다.
꿀 1킬로그램, 우리 식탁에 오르는 그 한 병을 위해 벌들은 수십만 송이의 꽃을 찾아 날아다닙니다. 국화처럼 당당한 꽃에서부터 이름 모를 들꽃까지, 각각의 꽃이 가진 고유한 영양분을 한 방울 한 방울 모아 완성된 것이 바로 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꿀 한 숟가락을 먹는다는 것은, 수십만 개의 꽃이 품은 생명력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현대 의학도 이를 증명합니다. 꿀은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식욕을 돋우며, 시력을 보호하고 피부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피로한 몸을 회복시키고, 상한 위장을 달래줍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가장 맛있는 것을 표현할 때 "꿀맛 같다"고 말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부를 때 '하니(honey)'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요즘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매일 수천 개의 뉴스 알림이 울리고, SNS 피드는 끊임없이 새로워지며,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강연들이 '성공의 비법'을 약속합니다. 마치 화학비료로 억지로 키워진 화려한 꽃밭처럼,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진정한 영양분이 부족한 정보들로 가득합니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의 영혼은 점점 메말라갑니다. 더 많이 알아도 지혜롭지 못하고, 더 많이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며, 더 빨리 달려도 평안하지 못합니다. 무언가 본질적인 것이 결핍되어 있다는 느낌, 진짜 '꿀'을 맛보지 못하고 있다는 허기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잠언 24장 14절은 바로 그 갈증에 대한 답을 제시합니다.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가 아닙니다. 그것은 꿀처럼 우리의 영혼을 소생케 하고, 삶을 감미롭게 만드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지혜로운 벌이 농약 친 꽃을 피하듯, 우리도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세상이 주는 화려한 성공의 공식들, 즉각적인 만족을 약속하는 유혹들 사이에서, 진정으로 우리 영혼을 살찌우는 것이 무엇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벌이 수십만 송이의 꽃을 찾아다니듯, 하나님의 지혜는 성경 전체에 걸쳐 펼쳐져 있습니다.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르기까지, 각 페이지마다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 규례와 교훈, 증거와 경외의 도가 담겨 있습니다.
어떤 구절은 국화처럼 크고 명확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 3:16) 같은 말씀들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진리입니다. 하지만 어떤 구절은 담벼락 아래 작은 들꽃처럼 소박합니다. 계보나 율법의 세세한 규정들 속에서도, 우리가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성품과 인간을 향한 그분의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모든 말씀을 꿀처럼 모으는 인내와 부지런함입니다. 벌이 하루아침에 꿀을 만들지 못하듯, 우리의 영적 성숙도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 말씀을 묵상하고, 일상 속에서 그 진리를 씹어 먹으며, 삶의 현장에서 적용해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읽은 한 구절, 점심시간에 떠올린 찬송가 한 소절, 잠들기 전 기도 중에 마음에 와닿은 말씀 하나하나가 모여 우리 영혼의 꿀이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억력을 좋게 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고, 영적 식욕을 왕성하게 하여 더욱 말씀을 사모하게 하며, 영적인 눈을 밝게 하여 세상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 더 놀라운 진리가 있습니다. 수십만 송이 꽃에서 모은 꿀의 모든 영양분이 한 병 안에 응축되어 있듯, 성경 전체에 흩어져 있던 하나님의 지혜가 한 분 안에 완전히 나타났습니다. 요한복음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지혜에 대해 가르치신 스승이 아닙니다. 그분 자체가 지혜이십니다. 골로새서는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골 2:3)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연구하고 신학을 공부해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꿀이 없는 벌집을 가진 것과 같습니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수많은 '구원자'를 제시합니다. 기술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돈이 안전을 보장할 것이라고, 성공이 의미를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발전된 문명도 바이러스 하나 앞에서 무력할 수 있다는 것을, 아무리 많은 부도 죽음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예수님은 스스로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단순히 길을 '아는' 분이 아니라 길 '자체'이시고, 진리를 '가르치는' 분이 아니라 진리 '그 자체'이시며, 생명을 '주는' 분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이십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참 지혜이신 예수님을 통해 생명 길을 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무엇보다 선택의 문제입니다. 벌이 매 순간 어느 꽃으로 날아갈지 선택하듯, 우리도 매 순간 무엇을 기준으로 살 것인지 선택합니다.
직장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이익을 취할 기회가 왔을 때, SNS에서 누군가를 비방할지 말지 결정할 때, 바쁜 일상에서 예배를 드릴지 말지 고민할 때, 우리는 선택합니다. 생명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 모든 선택의 순간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묻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이 내 판단의 기준이 되고, 그분의 성품이 내 행동의 본이 되며, 그분의 사랑이 내 관계의 원칙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세상은 다른 길을 가라고 유혹합니다. "다들 그렇게 하는데 너만 왜 그래?" "그렇게 정직하게 살면 손해야" "신앙은 신앙이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지" 같은 목소리들이 끊임없이 들려옵니다. 하지만 잠언은 약속합니다.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단순한 긍정적 사고나 희망 사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입니다.
'장래가 있다'는 말은 단순히 미래에 좋은 일이 생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원문의 뉘앙스는 '끝이 있다', 즉 목적지가 확실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무의미한 방황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번아웃'을 경험합니다. 열심히 달려왔는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공허함, 성취했는데도 만족스럽지 않은 허무함이 우리를 짓누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 안에서 사는 사람은 다릅니다. 비록 지금 힘들고 어려워도, 이 모든 과정이 나를 더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빚어가고 있다는 것을, 영원한 본향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강력한 약속입니다. 세상의 희망은 상황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주가가 오르면 기쁘고 내리면 절망하며, 건강할 때는 자신만만하다가 병이 오면 무너집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 있는 소망은 환경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에서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압니다"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환난조차도 우리의 소망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는 놀라운 역설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소망이 변하는 환경이 아니라 변치 않는 예수 그리스도께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오늘 당신의 영혼은 어떤 꿀을 맛보고 있습니까? 어쩌면 지금 당신은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을지 모릅니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관계의 어려움, 건강의 염려, 미래에 대한 불안이 당신을 짓누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세상은 화려한 해결책들을 제시하지만, 그것들은 농약 친 꽃처럼 당장은 화려해 보여도 진정한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오늘 아침, 단 5분이라도 성경을 펼쳐보십시오. 시편 한 편을 천천히 읽어보십시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말씀 한 구절을 묵상해보십시오. 그것이 당신 영혼을 위한 첫 한 방울의 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하루 종일 씹어 먹으십시오. 출근길에, 점심시간에, 잠들기 전에 그 말씀을 되새기십시오. 벌이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꿀을 모으듯, 우리도 하루 종일 말씀을 모으고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한 병의 꿀이 수십만 송이 꽃의 여정으로 만들어지듯, 우리의 영적 성숙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매일 한 숟가락씩, 꾸준히 하나님의 지혜를 맛보다 보면, 어느새 우리 삶 전체가 그 달콤함으로 변화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지혜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으십시오. 그분 안에 생명이 있고, 그분이 곧 길이십니다. 그분을 따라가는 것, 그것이 바로 생명 길을 걷는 것입니다.
당신의 장래는 확실합니다. 당신의 소망은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의지하는 것이 변하는 세상이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영혼의 꿀을 맛보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잠언 말씀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꺼지지 않는 심판의 불꽃 (0) | 2026.02.20 |
|---|---|
| 돌밭에서 피어난 기도 (0) | 2026.02.20 |
| 마음이 꾀하는 길 - 영혼이 도착하는 곳 (0) | 2026.02.06 |
| 지혜는 방향을 보고, 지식은 바람을 읽는다 (0) | 2026.01.31 |
| 은에서 찌끼를 제하라, 그리하면 쓸 만한 그릇이 나오리라 (0) | 2026.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