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에서 찌끼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 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 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잠언 24:4~5)
성경은 종종 우리의 눈에 보이는 일상의 장면을 통해 깊은 영적 진리를 들려줍니다. 은을 제련하는 장인의 손길과,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통치가 한 구절 안에 나란히 놓여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한 사람의 인격이나 한 나라의 운명은 같은 원리 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에미 카미켈은 그의 저서에서 인도의 한 대장장이와 나눈 대화를 소개합니다. 그는 대장장이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금을 연단할 때, 이것이 순금이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대장장이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금속 속에서 제 얼굴이 또렷이 보일 때까지 연단합니다. 불순물이 남아 있다면, 제 얼굴은 흐릿하게 비칠 뿐입니다.”
이 짧은 대답에는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불순물은 겉으로는 금과 섞여 있지만, 불 앞에서는 반드시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것이 완전히 제거되기 전까지 금은 결코 ‘쓸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합니다. 성경은 이 장면을 곧바로 왕의 통치와 연결합니다. 은에서 찌끼를 제거하듯, 왕도 자신의 곁에서 악한 자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권력의 중심에는 언제나 찌끼와 같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불과 같습니다. 사람을 따뜻하게 살릴 수도 있지만, 잘못 다루면 모든 것을 태워버립니다. 그 불 주변에는 언제나 아첨하는 자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 자들, 정의보다 유익을 택하는 자들이 모여듭니다. 이들은 왕을 위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왕의 권위를 이용해 자신의 배를 불릴 뿐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이 원리는 너무도 분명합니다. 조선 말기, 왕권이 약해질수록 간신배들은 더욱 기승을 부렸고, 그 결과 백성들은 수탈당하고 나라는 기울어 갔습니다. 반대로 세종대왕은 학문과 인격을 갖춘 신하들과 더불어 국정을 논했습니다. 왕에게 불편한 말이라 할지라도, 나라를 위한 말이라면 귀를 닫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통치는 사람의 힘이 아니라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섰습니다.
간신을 곁에 둔 통치의 결과는 언제나 같습니다. 민심은 흉흉해지고, 사회는 혼탁해집니다. 힘 있는 자들은 약자를 짓밟고, 법은 정의의 기준이 아니라 권력자의 도구가 됩니다. 겉으로는 질서가 유지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은 이미 썩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마치 겉은 반짝이지만 찌끼가 가득 섞인 은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왕이 진심으로 백성을 사랑하고, 충성된 사람들과 함께 나라를 다스릴 때 상황은 달라집니다. 충신은 왕을 기분 좋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왕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듣기 싫은 말을 할 줄 알고, 왕의 결정이 백성을 해칠 때 멈추게 하는 사람이 진짜 충신입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하는 통치는 겉으로 화려하지 않아 보여도,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집니다.
이 말씀은 비단 왕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우리 각자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주변에 사람을 둡니다. 나의 욕심을 부추기는 사람, 나를 정당화해 주는 사람, 불편한 진실은 감추고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그대로 두면, 우리의 인격과 신앙은 점점 흐려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얼굴이 비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하시는 분이십니다. 불을 통해 찌끼를 드러내시고, 제거하시며, 마침내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또렷이 비치게 하십니다. 그 과정은 아프고 불편하지만, 그 결과는 분명합니다. 쓸 만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은에서 찌끼를 제하지 않으면, 아무리 값비싼 은이라도 쓰임을 잃습니다.
마찬가지로 삶에서, 공동체에서, 교회와 사회에서 제거되지 않은 찌끼는 결국 모든 것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진실을 말해주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불편한 연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는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게 됩니다. 이것이 잠언이 말하는 지혜이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깊은 권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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