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세기 42장 1~23절
"그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 요셉의 형 열 사람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갔으나. 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은 그의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생각에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 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아니니이다 당신의 종들은 곡물을 사러 왔나이다.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들로서 확실한 자들이니 당신의 종들은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아니라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 그들이 이르되 당신의 종 우리들은 열두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막내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막내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꾼이니라 하고,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그들 사이에 통역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듣는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예수님을 믿으면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믿는데도 일이 안 풀릴 때가 있습니다. 아이가 속을 썩이고, 사업이 어려워지고, 몸이 아픕니다. 그러면 마음속에서 이런 말이 올라옵니다. "하나님, 저 이렇게 열심히 믿는데 왜 이러십니까?" 오늘 본문의 주인공 야곱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태중에서부터 사랑하신 사람이고, 믿음의 사람이라고 성경이 인정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집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먹을 것이 떨어진 것입니다. 야곱은 아들들에게 말합니다. "애굽에 곡식이 있다고 하니 가서 사 오너라." 열 아들이 양식을 사러 떠납니다. 막내 베냐민만 남겨 둡니다. 큰아들 요셉을 잃고 난 뒤라, 남은 막내까지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일생을 한번 보십시오. 젊어서는 형을 속이고 도망갔습니다. 외삼촌 집에서는 거꾸로 자기가 속으며 고생했습니다. 사랑하던 아내 라헬은 고향에 돌아오는 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나님과 씨름하다가 다리를 다쳐서 평생 지팡이를 짚고 살았습니다. 제일 아끼던 아들 요셉이 죽은 줄 알고 피 묻은 옷을 안고 십수 년을 울었습니다. 늙어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아들들을 남의 나라에 보내 양식을 사 와야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이방 땅 애굽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의 인생이 이렇습니다. 사랑과 믿음, 그런데 고생, 이 세 가지가 잘 어울립니까? 잘 안 어울립니다. 그런데 이것이 성경이 보여 주는 믿음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창세기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아주 재미있는 일이 나옵니다.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시신을 가나안에 묻으러 갑니다. 그런데 곧장 가지 않고 요단강 건너편까지 돌아가서 칠 일 동안 울고, 그다음에 강을 건너 들어갑니다. 이것은 훗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지나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는 길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장면에서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릅니다.
야곱의 일생은 우리 모두의 인생을 미리 보여 주는 그림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고생도 하고 눈물도 흘리지만, 믿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겪는 일들은 그 나라로 가는 길 위의 일일 뿐, 끝이 아닙니다. 그걸 알면 잘될 때 교만하지 않고, 안될 때 주저앉지 않습니다.
그래도 힘들 때는 힘듭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시는 아들이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세요." 그런데 아버지는 그 잔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는 누가 봐도 실패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가 우리를 살리는 가장 큰 승리였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 눈에 이해가 안 되는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은 항상 옳았습니다.
그러면 정말 힘든 일을 당하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에서 유명한 믿음의 사람들도 흔들렸습니다. 유대교의 한 랍비는 어린 아들이 병으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까?"라는 책을 썼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성실하게 살았는데 하나님이 왜 이러시느냐는 항의였습니다.
『나니아 연대기』를 쓴 C. S. 루이스는 평소에 믿음에 대한 좋은 글을 많이 썼던 분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일기장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을 쏟아 놓았습니다. 평소에 "고통을 없애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심은 아니다"라고 쓰던 사람이 정작 자기가 아프니까 그 말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 마음을 압니다. 힘들 때는 아무리 좋은 말도 안 들어옵니다. 하나님께 따지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우리가 약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약함을 보시고도 우리를 놓지 않으십니다. 원망하는 우리를 끝내 붙드셔서, 마침내 하나님 나라까지 데려가십니다.
그럼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어려운 일을 허락하실까요? 성경은 인생을 '시험'이라고 합니다. 신명기 8장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십 년 동안 광야를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너를 낮추시고 시험하신 것이다." 학교 시험은 점수를 따려고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시험은 점수를 따려는 시험이 아닙니다. 우리 속을 보여 주시려는 시험입니다. 이 시험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 "나는 내 힘으로는 안 되는구나" 하고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완전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을 머리로만 아는 것과 몸으로 겪어서 아는 것은 다릅니다. 어려운 일을 겪어야 "아, 나는 정말 안 되는 사람이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예수님의 십자가가 얼마나 고마운지 알게 됩니다.
어느 존경받는 목사님이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나는 가끔 목사 일을 하기 싫다. 내 설교와 내 삶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교하는 내내 '너는 그렇게 사느냐?'는 소리가 마음속에서 들린다." 그런데 이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내가 오늘 설교하는 것은, 이런 나를 하나님이 위선이 아니라 긴장 속에 있는 사람으로 봐 주시기 때문이다." 설교하는 목사도 자기가 못 하는 설교를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서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구분이 있습니다. "나는 잘할 수 있는데 아직 못하네"라는 말과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구나"라는 말은 완전히 다릅니다. 앞의 말은 겸손해 보여도 사실은 내 힘으로 해 보겠다는 생각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뒤의 말이 은혜를 아는 사람의 고백입니다. 신앙생활은 앞의 자리에서 뒤의 자리로 옮겨 가는 일입니다.
둘째, 행복이 가진 것에 달려 있지 않음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신명기 8장 3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굶기시기도 하고 만나를 먹이기도 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줄 알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월급날 통장에 찍힌 돈을 보며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 달 동안 아프지 않고 출근한 것, 회사가 문을 닫지 않은 것, 이 모두가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된 일입니다.
창세기 8장 22절에서 하나님은 "땅이 있는 동안에는 심고 거두는 일과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그치지 않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먹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 덕분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2~13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가난하게 사는 법도 알고 풍족하게 사는 법도 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돈이 많든 적든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된다는 고백입니다.
이제 애굽 이야기를 해 봅시다. 요셉이 애굽에 들어오기 전에는 나일강 근처 땅에서 곡식이 늘 풍성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요셉이 들어가자 흉년이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왕이 꿈을 꾸었는데, 살찐 소 일곱 마리를 마른 소 일곱 마리가 잡아먹는 꿈이었습니다. 칠 년 풍년 뒤에 칠 년 흉년이 온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흉년 동안에는 요셉에게 가서 머리를 숙이지 않고는 아무도 양식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배웁니다. 첫째, 예수님이 우리 삶에 들어오시면 흉년이 올 수 있습니다. 그 흉년은 가난만이 아닙니다. 돈이 많은데도 마음이 텅 빈 것도 흉년입니다. 집도 사고 차도 샀는데 밤에 혼자 앉으면 공허한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돈이 없어서 무시당하고 몸에도 힘이 빠지는 것도 흉년입니다. 어떤 모양의 흉년이든 그 앞에서 우리는 요셉에게 가서 양식을 구걸했던 사람들처럼 예수님께 나아가게 됩니다. "예수님 아니면 저는 안 됩니다" 하고 말입니다. 그것이 흉년을 통해 하나님이 가르치시려는 것입니다.
둘째, 믿는 사람의 인생은 반드시 영광으로 끝납니다. 요셉은 흉년이 들기 전에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첫째 이름은 므낫세인데, "하나님이 내 모든 고난을 잊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둘째 이름은 에브라임인데, "하나님이 내가 고생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이름 두 개에 요셉의 인생이 다 들어 있습니다. 고난이 먼저 오고, 그다음에 영광이 옵니다. 세상 사람들은 풍년에서 흉년으로 가지만, 믿는 사람은 고난에서 영광으로 갑니다. 거꾸로 사는 것 같지만 그것이 맞는 길입니다.
바로 왕은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꿈이 무슨 뜻인지 몰라 괴로워했습니다. 그 꿈을 풀어 준 사람은 감옥에 있던 요셉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성경이 있습니다. 성경으로 세상을 보면, 뉴스에 나오는 전쟁과 재난과 병도 사람이 얼마나 약하고 하나님을 떠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모습으로 읽힙니다. 세상의 큰 나라와 힘센 사람들도 하나님이 성도를 키우시는 무대에 잠깐 나온 조연일 뿐입니다. 믿는 사람 위에는 하나님 한 분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세상 소식에 겁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쉬운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똑같이 손을 칼에 베었습니다. 상처의 깊이도 같습니다. 한 사람은 요리사가 되려고 칼질을 연습하다가 베였습니다. 아프긴 하지만 "이것도 요리사가 되는 과정이지" 하고 참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믿었던 친구가 칼을 휘둘러 베였습니다. 손도 아프지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지?" 하는 마음이 더 아픕니다.
똑같은 상처인데, 한 사람은 덜 아프고 한 사람은 훨씬 더 괴롭습니다. 앞의 것은 아픔이고, 뒤의 것은 괴로움입니다. 몸의 아픔은 같아도,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괴로움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어려움은 우리를 해치려는 공격이 아닙니다. 우리를 하늘나라의 왕자와 공주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입니다. 이것을 알면 아픔이 와도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고, 괴로움 속에 빠졌다가도 빨리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야곱에게도, 요셉에게도, 우리에게도 흉년은 옵니다. 그러나 흉년의 끝에는 요단강 건너 가나안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흉년 속에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시는 중이시다." 오늘 힘든 일 가운데 계신 분이 있다면, 이 말씀을 꼭 붙드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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