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마태복음 8:8,10,13)
어느 날 한 백부장이 예수께 나아왔습니다. 그의 부하가 병들어 누워 있었고, 그는 도움을 구했습니다. 예수께서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백부장은 뜻밖의 대답을 드렸습니다. "주여, 저는 주를 내 집에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다만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
이 말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랜 군 생활에서 체득한 통찰이었습니다. 백부장은 날마다 명령의 언어로 살아왔습니다. 그가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왔습니다. 명령은 거리를 뛰어넘어 작용했습니다. 그는 그 경험에서 믿음을 길어 올렸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믿음을 이스라엘 중에서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칭찬하셨고, 그 부하는 그 시각에 나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왜 어떤 치유는 말씀 한 마디로 이루어지고, 어떤 치유는 반드시 만남과 접촉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요?
어느 목사님이 아는 집사님은 아들이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무엇에 홀린 듯 집 안에서 고함을 지르고, 가족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집사님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해 왔고, 목사님은 그 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끝난 바로 그날 밤, 아들은 조용해졌습니다. 며칠 후 집사님은 말끔히 회복된 아들의 손을 잡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백부장의 이야기처럼, 접촉 없이도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경우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랫동안 병으로 누워 기도만 해도 낫지 않던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는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어느 날 결심하고 집회에 나왔습니다. 들것에 실려 지붕을 뚫었던 중풍병자처럼, 그에게도 나아오는 수고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그에게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집 안에서의 수많은 기도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공간을 바꾸고 몸을 움직인 그 순간에 일어난 것입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맨프레드 케츠 드 브라이스 교수는 사람들 사이에는 여러 종류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말로 하는 언어만이 아니라, 몸짓의 언어, 감정의 언어, 시간의 언어, 그리고 공간의 언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공간의 언어는 친밀함을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입니다.
그가 발견한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서양의 비즈니스 상담에서 가장 효과적인 거리는 약 1.5미터에서 2.5미터 사이라고 합니다. 너무 멀면 마음이 열리지 않고, 너무 가까우면 오히려 불편함과 거부감이 생깁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보이지 않는 공간을 가지고 있고, 그 공간이 적절히 존중될 때 비로소 마음을 열고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부흥회 강사들이 "앞자리가 금 자리"라고 말하며 앞으로 나오기를 권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강사와 청중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질 때 친밀함이 생기고, 그 친밀함 속에서 마음이 더 깊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리학적 현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영적 원리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유아는 할아버지의 수염을 잡아당겨도 웃음으로 넘어갑니다. 그러나 청소년이 된 손자가 같은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무례함이 됩니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오히려 지켜야 할 예의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무조건 기도를 많이 하면 친밀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때로 단순한 착각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영적 성장에 걸맞은 거리, 그 관계에 어울리는 방식이 있습니다.
주종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거리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허락되는 거리는 다릅니다. 예수께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하시며 나아가기를 거부하셨던 것처럼, 시간과 장소와 사람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 공간성과 시간성은 치유에 있어서도, 관계에 있어서도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닙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상담을 요청해 온 어떤 분에게 반드시 시간을 내어 직접 만나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분은 의아해하며 물었다고 합니다. "꼭 그래야 하나요? 주님은 말씀만으로도 고쳐주셨잖아요." 맞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백부장이라는 특정한 사람과, 그 순간이라는 특정한 시간과, 그 관계라는 특정한 맥락 속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모든 관계는 고유합니다.
어떤 관계에서는 말씀 한 마디면 충분하고, 어떤 관계에서는 반드시 몸을 움직여 나아가야 하며, 어떤 경우에는 손을 얹는 접촉이 있어야만 치유가 시작됩니다.
사회과학은 이미 오래전부터 공간과 거리가 인간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진지하게 연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신학과 영성의 영역에서는 이 주제가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공간의 관계성을 두신 것은 그것을 통해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시려는 섭리가 담겨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백부장은 자신의 삶에서 얻은 지혜로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각자의 삶과 경험 속에서 하나님과의 거리를 가늠하는 지혜를 배워가야 합니다. 가까이 다가가야 할 때와 조용히 거리를 유지해야 할 때를 아는 것, 그리고 때로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들것에 실려서라도 나아가야 할 때를 아는 것, 그 분별 안에서 진정한 친밀함이 자라납니다.
'성령과 기름부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성령의 두 얼굴 - 뜨거움과 차가움 (0) | 2026.02.27 |
|---|---|
| 허물어야 세워진다 (0) | 2026.02.19 |
| 말씀으로 치유 받은 사람들 (0) | 2026.02.12 |
| 질병의 원인 - 그 깊은 의미를 찾아서 (0) | 2026.02.12 |
| 온전해지는 길로 인도하기 위한 영적 경험 (0) | 2026.0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