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마태복음 8:16)
병상에 누운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종종 깊은 질문에 빠집니다. 왜 어떤 이는 살아나고 어떤 이는 떠나가는 걸까요? 이것은 병원에서도,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치료를 받아도 결과는 다르고, 같은 기도를 받아도 응답은 제각각입니다.
혹자는 이를 운이나 재수의 문제라 하고,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없고의 차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결국 그 사람 자신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붙들고, 어떻게 고백하느냐의 문제 말입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에게는 놀라운 기록이 있습니다. 그가 목회했던 12년 동안 단 한 건의 장례식도 치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비결은 간단했습니다. 믿음과 치유에 대해 성도들에게 철저히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해긴 목사님의 학교에서 배우고 돌아와 교회에서 믿음과 치유를 가르치기 시작하자, 장례식은커녕 병환자도 거의 생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반면 오늘날 많은 교회에 병환자가 넘쳐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치유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 사함에 대해서는 열심히 가르치면서, 왜 치유에 대해서는 침묵할까요? 예수님의 십자가 속량에는 죄 사함과 함께 질병 치유도 포함되어 있는데 말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해긴 목사님 교회의 피아노 반주자 어머니에 관한 것입니다. 82세의 이 할머니는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고, 의사는 10일밖에 살지 못할 거라 선고했습니다.
해긴 목사님이 심방을 갔을 때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 나이가 82세입니다. 지금까지 암을 앓아왔으니 그냥 죽도록 내버려 두세요."
하지만 해긴 목사님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하나님의 치유를 받으시고, 그다음에 죽고 싶다면 죽으세요. 이처럼 병을 가진 채로 죽지는 마세요."
여기에는 중요한 신학적 확신이 담겨 있습니다. 병으로 죽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낫고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우리의 질병을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이루어놓으신 치유를 그냥 포기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해긴 목사님은 그 할머니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영을 붙잡고 계속해서 말씀을 먹였습니다. 충분히, 반복해서, 끈질기게 말씀을 그녀의 영 속으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얼마나 걸렸을까요? 6개월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치유되었습니다. 그녀는 93세까지 살았으며, 질병 없이 주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이 말하는 것처럼,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 듣는 것이 믿음의 비결입니다.
그래서 해긴 목사님은 치유학교를 개설했습니다. 치유를 받을 때까지 계속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1주일이 걸리든, 한 달이 걸리든, 6개월이 걸리든, 1년이 걸리든 상관없습니다. 나을 때까지 듣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한두 번 치유 메시지를 듣고 나서 "왜 안 낫지?"라고 불평합니다. 하지만 그 82세 할머니처럼, 6개월 동안 말씀을 계속 먹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 병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나을 때까지 들으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두 번째 이야기는 더욱 극적입니다. 텍사스 포트워스에서 집회를 하던 중, 담임목사가 82세 여전도사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녀는 2년간 위암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2년 전 수술을 받았을 때, 의사가 개복했다가 악성 종양이 너무 많아서 수술을 포기하고 그냥 덮어버렸다고 합니다. 그 후 2년 동안 종양은 계속 커져서 그녀의 배는 산처럼 높이 솟아올라 마치 임신한 여자 같았습니다. 몸은 해골처럼 말라 있었습니다.
이 여전도사도 첫 번째 할머니와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저는 구원을 받았고 성령 충만도 받았어요. 너무나 고통을 많이 겪었으니 이젠 죽을 준비가 되어 있어요. 저를 그냥 죽게 내버려 두세요." 하지만 두 목사님의 대답은 동일했습니다. "아니에요.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해긴 목사님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잠언 4장 20~22절을 읽어주었습니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에 건강이 됨이니라."
그리고 자신의 간증을 나누었습니다. "내가 불치병에 걸려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이 말씀이 나를 살렸습니다. 의사는 내가 죽을 것이라 말했어요.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죽은 자로 보았습니다." 여기서 해긴 목사님은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 잠언 말씀에서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지요. '말씀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라.' 아, 말씀을 내 눈앞에 계속 두어야 하는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눈에서 떠나지 않게 했습니다. 몸에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자신을 살아 있는 자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치유받은 다음 설교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완전히 치유되었습니다.
해긴 목사님은 여전도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그 부풀어 오른 위를 바라볼 때마다 그게 납작해진 모습을 보십시오. 당신이 다시 설교하고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이 이처럼 암으로 죽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당신이 죽기를 원한다면 죽을 수 있어요. 그러나 먼저 하나님이 당신을 치유하도록 하십시오. 당신이 이렇게 죽는다면 하나님이 아무런 영광도 받지 못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긍정적 사고가 아닙니다. 이것은 믿음의 고백입니다.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보는 것입니다. 해긴 목사님이 안수기도를 하고 떠난 것은 1957년 9월 초순이었습니다.
이듬해 5월, 해긴 목사님은 다시 그 교회에서 집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담임목사가 그 여전도사가 치유받았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교회에서 두 여자가 찾아왔습니다. 그중 한 여자가 해긴 목사님에게 다가와 두 팔로 덥석 안으면서 물었습니다.
"목사님, 저를 알아보지 못하시겠어요?" 너무 젊고 예뻐 보여서 누군지 몰랐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저는 아무개 자매예요!" 바로 그 여전도사였습니다. 해골처럼 말랐던 그 여자, 배가 산처럼 솟아올랐던 그 여자가 이렇게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 해긴 목사님은 그녀를 허그하면서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치유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두 분 목사님이 저를 살려 주셨어요. 저는 해긴 목사님이 하신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거대한 위를 바라볼 때마다 저는 그게 납작해진 모습을 그려보면서 말씀을 고백했어요."
즉각적인 변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상태는 즉시 변화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 3개월이 지나자 그게 점점 작아지게 되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저의 위는 완전히 납작해졌고 모든 증상이 떠났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배웁니다. 치유는 때로 점진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즉시 나을 수도 있지만, 2~3개월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 기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말씀을 고백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저는 여름까지 집회 스케줄이 잡혀 있어요. 제가 젊었을 때처럼 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저는 여름 내내 말씀을 전할 것이고 겨울에는 쉴 예정입니다."
여러 해 후, 해긴 목사님은 오순절 전도잡지에서 그녀가 93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담임목사가 전한 이야기는 아름다웠습니다.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말씀을 전했고, 어느 날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내가 천국으로 갈 때가 되었다고 주님이 나에게 알려주셨다." 그녀는 흔들의자에 앉은 채 작별 인사를 하고 그냥 주님의 품으로 떠났습니다. 평안하게, 고통 없이, 질병 없이. 이것이 바로 성경적인 죽음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자기 수를 다 살고 기운이 진하여 죽는 것 말입니다.
이 두 이야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첫째, 병 없이 살다가 죽고, 병에 걸렸으면 나은 다음에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질병을 통해 뜻을 이루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질병을 담당하셨다면, 우리가 질병으로 죽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일 수 있겠습니까?
둘째, 목회자는 말기 환자일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사역해서 치유를 받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해긴 목사님은 두 할머니가 "죽게 내버려 달라"고 했을 때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영을 붙잡고 말씀으로 양육했습니다. 그 결과 둘 다 치유되어 93세까지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셋째, 환자는 아무리 절망적인 상태에 있을지라도 생명의 끈을 놓으면 안 됩니다. 의사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선포했듯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습니다." 마리아는 뭐라고 답했습니까?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한국 교회는 흔히 말씀 중심의 교회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말씀대로 믿는 성도가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으로 귀신을 내쫓고 병자들을 치유하셨습니까? 바로 말씀으로 치유하셨습니다.
넷째, 질병과의 싸움을 어설프게 하면 안 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칠 때처럼, 여호수아가 기브온 전쟁에서 태양과 달을 향해 명령하듯, 갈렙이 견고한 아낙 산지를 향해 승리를 선포하듯 담대해야 합니다. 천국을 침노하는 영성으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해긴 목사님은 이것을 불독의 영성이라고 했습니다. 불독은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그렇게 물고 늘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성도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질병이란 나으라고 있는 것이지, 죽으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질병 앞에 기가 꺾이지 마십시오. 당신의 믿음을 잘 관리하십시오. 주님께서 그의 생명을 쏟아서 우리에게 치유를 선물해주셨습니다. 그 값비싼 선물을 그냥 포기할 수 없습니다. 아픈 분들은 이 병에서 낫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십시오. 즉시 낫기도 하지만, 시간이 조금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 기간 동안 포기하지 마십시오.
12년간 혈루증으로 고생하며 의사에게 돈을 다 쓰고도 낫지 못한 여자를 기억하십시오. 그녀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나으리라." 이 고백을 날마다 반복했고, 마침내 나았습니다.
암으로 죽어가던 두 여자도 오직 말씀만으로 치유되었습니다. 하나는 6개월이 걸렸고, 다른 하나는 2~3개월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둘 다 포기하지 않았고, 둘 다 93세까지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마태복음 8장 8절에 나오는 백부장의 고백을 기억하십니까?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예수님은 이 믿음을 보시고 감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시면 낫겠다는 확신 말입니다.
당신이 지금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이 확신을 붙드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눈앞에서 떠나게 하지 마십시오. 그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그 말씀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에 건강이 됩니다.
오늘도 말씀을 붙들고, 치유를 고백하며, 승리를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두 할머니처럼 완전한 치유를 경험하고, 건강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수를 다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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