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염려가 찾아옵니다. 염려는 마치 작은 균열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틈처럼 보이지만, 그 틈으로 불신이 스며들어 결국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문제를 다루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마 6:30)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히 “염려하지 말라”는 훈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너를 책임지신다”는 아버지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약속을 의심할 때, 염려가 우리 삶에 스며듭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진실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수수께끼처럼 들립니다. 아무리 들어도 마음에 박히지 않고, 아무리 묵상해도 해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의 빛은 진실한 마음을 비출 때에만 그 참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주님처럼 진실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성령님을 받아들이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 가능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하실 때, 그 음성에 순종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놀랍도록 투명하고 진실해집니다.
예수님은 새를 보라고 하십니다(마 6:26). 새들은 먹을 것을 쌓아두지 않습니다. 단지 본능을 따라 움직일 뿐인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만약 작은 새 한 마리조차 하나님께서 돌보신다면, 그분의 자녀 된 우리는 얼마나 더 돌보아 주시겠습니까?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하나님보다 더 잘 아는 것처럼 굴 때가 있습니다. “내 미래는 내가 책임져야 해”, “내 문제는 내가 더 깊이 고민해야 풀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주님과의 관계를 흐리게 만들고, 결국 염려가 우리 안에 자리 잡도록 허락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십니다(마 6:28). 백합화는 심겨진 자리에서 묵묵히 자랍니다. 스스로 옮겨 다니며 더 좋은 땅을 찾아다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심겨진 자리를 거부합니다. 그래서 결국 아무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늘 불안한 마음으로 흔들리며 삽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불평하거나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주어진 자리에서 순종하며 자라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우리의 삶을 꽃피우십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나머지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 말씀을 믿지 못해, 수많은 고민과 질문으로 하나님께 걱정을 끼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결’의 참뜻을 다시 붙잡아야 합니다. 성결은 단 한 번의 결단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의 삶에서 자신을 다시금 하나님께 구별해 드리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감정, 내 시간을 주님께 따로 떼어드릴 때 비로소 우리는 성결한 삶을 살아갑니다.
주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오늘도 이 말씀에 마음을 열고,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염려를 내려놓는 믿음의 걸음을 내딛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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