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신앙생활 가운데 흔히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 말씀을 실제 삶에 적용하려고 하면, 많은 갈등과 혼란을 겪게 됩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맡김”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임”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결코 게으르거나 무기력하게 손을 놓아버리는 태도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그것을 혼동합니다. 하나님께 맡긴다 하면서 사실은 책임을 회피하거나, 마음속 깊은 부담을 외면하고 도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 맡기라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과연 맞는가 하는 의문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이때 생기는 내적 갈등은 믿음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찾아옵니다. 바울이 고린도후서에서 고백한 것처럼,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고후 7:5)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믿음의 사람도 마음속에서는 끝없는 씨름과 갈등을 겪습니다.
이 기다림은 수영 경기의 싱크로나이즈 선수와도 같습니다. 물 위로 드러나는 모습은 우아하고 평화롭지만, 물속에서는 쉬지 않고 다리를 움직여야 합니다. 만약 잠시라도 멈춘다면 곧 가라앉고 맙니다. 신앙의 기다림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평온하고 차분해 보일지라도, 내면에서는 수없이 많은 생각과 싸우며 끊임없이 기도의 발길질을 이어가야 합니다.
이 기다림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무기력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치열한 내적 싸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라”(롬 5:3)고 말했습니다. 그 즐거움은 고통을 모르는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과 갈등 속에서도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결단하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과정이 힘든 이유는 단순히 외부 환경 때문이 아닙니다. 그 뿌리는 바로 우리의 죄성(罪性)에 있습니다. 죄된 본성은 끊임없이 자기 주장을 하고, 자기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려 할 때마다 내 안에서 반발이 일어나고, 마음속에 변명, 억울함, 분노, 두려움 같은 감정들이 솟아납니다.
바울도 고린도후서 7장 11절에서 “간절함, 변명, 분함, 두려움, 사모함, 열심, 벌함”이라는 여러 감정을 고백했습니다. 믿음으로 기다리는 동안 그 역시 억울한 생각이 들고, 분노가 치밀고, 복수하고 싶은 유혹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내적 소용돌이를 결국 하나님께 맡김으로써 위로와 기쁨을 얻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이 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셨지만, 현실은 기근과 두려움으로 가득했습니다. 결국 그는 이집트로 내려가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믿음으로 맡긴다고 했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 해결하려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수십 년간의 기다림 속에서 그를 다듬으시고, 마침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사흘 길의 갈등 끝에 아브라함은 비로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어맡기는 신앙의 고백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믿음의 길에는 반드시 갈등과 실패가 동반되지만,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과정을 통과할 때 우리는 진정한 맡김을 배워갑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믿음으로 맡길 때의 갈등과 하나님으로부터 도피할 때의 두려움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가인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도망했을 때, 요나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피해 달아났을 때 그들의 마음을 지배한 것은 두려움과 자포자기였습니다. 이런 두려움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갈등이 아니라, 사단의 위협에서 오는 것입니다.
반대로 믿음으로 기다릴 때 생기는 갈등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간절하게 기도하게 하고, 더 깊이 하나님을 의지하게 합니다. 겉으로는 고통스럽지만 내면은 점점 담대해지고, 결국에는 기쁨과 자유를 맛보게 됩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은 말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움은 늘 형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를 두렵게 만들어 하나님의 은혜를 의심하게 하고, 맡긴 믿음을 무너뜨리려 합니다.
그러므로 게으름과 방임은 단순한 나태가 아니라, 결국 사단이 틈타는 통로가 됩니다. 반면에 믿음으로 맡긴 기다림은 내적 갈등이 따르지만, 그 갈등은 결국 우리를 담대하게 만들고, 마침내 기쁨과 승리로 인도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께 맡겼으니 이제 아무 걱정 없다”는 식의 태평스러움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믿음의 길은 끊임없는 갈등과 내적 씨름을 전제로 합니다. 갈등이 없다면, 그것은 사실상 믿음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곧 육신과 성령의 싸움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육신을 따르면 성령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고, 성령을 따르면 사단이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긴장 속에 살게 됩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피조물이 탄식하며 고통하는 이 싸움(롬 8:22)은 신앙인의 필연적 여정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맡기려 할 때 찾아오는 갈등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다듬고 계신 증거입니다. 갈등은 피동이나 방임이 아니라, 참된 믿음의 싸움 속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성령께서 그 갈등을 통해 우리를 연단하시고,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얻게 하실 것입니다.
요약하면, 믿음으로 맡기는 삶은 갈등 없는 평안이 아니라, 갈등 속에서 자라는 담대함입니다. 그리고 그 갈등은 우리를 하나님께 더 붙들리게 하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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