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린도전서 6:9~11)
바울은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고 말합니다. 고린도 교회 공동체 안에 있었던 실제적인 분쟁, 믿는 자들끼리 세상 법정에 고소를 하고 송사를 하는 상황 가운데 바울은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불의한 자의 것이 아니라는 선언을 합니다. 그 불의의 구체적인 목록은 우리가 쉽게 ‘남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음행하는 자, 우상 숭배자, 간음하는 자, 탐색하는 자, 남색하는 자, 도적, 탐욕을 부리는 자, 술 취하는 자, 모욕하는 자, 속여 빼앗는 자…” 어느 하나 우리 삶의 그림자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아니, 정직히 말해, 우리 모두는 이 목록에 해당됩니다. 어떤 사람은 과거형으로, 어떤 사람은 현재형으로, 그러나 누구도 이 말씀 앞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이미 너희 안에 임하였느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요? 우리는 어떻게 이 모순처럼 느껴지는 진실 앞에서, 도망가지 않고 복음의 중심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고린도전서 6장 11절은 전환점입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이 문장은 과거형으로 말하지만, 그 속에는 단지 ‘옛날 이야기’ 이상의 것이 담겨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그 목록에 해당하는 자들이고, 여전히 그 죄의 경향성이 우리 안에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선포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이 선언은 단순한 도덕적 갱신이나 자기 개선의 결과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그리고 성령 안에서 주어진 전적인 은혜입니다. 우리는 깨끗해졌고, 거룩하게 되었고, 의롭다 여김을 받았습니다. 내가 무엇을 이루어서가 아니라, 예수가 이루신 것을 나에게 덧입혀 주셨기에 거저 받은 선물입니다.
로마서 3장에서 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단언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살아서, 죄를 피해서, 조심해서 의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율법의 목적은 의롭게 하려 함이 아니라, 죄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준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복음이 있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라.” 우리는 의롭지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의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더 이상 우리의 행위로 평가받는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과 죽음을 덧입은 자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자가 된 것입니다.
이 복음의 진리를 깨달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도덕적인 우월감을 가진 채,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송사하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강력한 복음의 선포를 한 이유는, 바로 그런 위선적인 교회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너희 중에 옳은 자가 누구냐? 다 똑같이 불의한 자였고, 다 예수로 인해 거저 용서받은 자들인데, 너희가 어찌하여 서로를 세상 법정으로 끌고가느냐?” 이 복음은 우리를 자기 의에서 해방시킵니다. 이 복음은 우리를 비판 대신 용서로, 고소 대신 겸손으로, 정죄 대신 포용으로 이끕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단지 몇 가지 도덕적 개혁이 아닙니다. “너를 나에게 달라.” 하나님은 우리 전체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손과 발, 입술과 생각뿐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를 나에게 의탁하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 안에서만 우리는 진짜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 안에서만 우리가 얼마나 무가치한 죄인이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존귀한 자로 바뀌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가 유일하게 붙잡을 것은, 나의 변화된 삶의 조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불의한 자에게 허락되지 않지만, 그분의 은혜 안에서 우리는 씻기운 자요, 거룩하게 된 자요, 의롭다 하심을 입은 자입니다.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자로서, 오늘도 우리는 겸손하게, 감사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단지 미래의 어떤 장소가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그 나라는 지금, 여기,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 가운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교회는 세상의 논리로 서로를 판단하고, 권리를 주장하며, 심지어 믿음의 형제를 법정으로 고소하기도 합니다. 고린도 교회만의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안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고발과 분열, 자기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방식으로 확장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원칙으로 다스려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은혜로 통치되고, 복음으로 세워지며, 사랑 안에서 자라납니다.
우리는 복음을 믿는 순간, ‘하늘 시민권자’로 부름받았습니다. 더 이상 이 세상의 질서와 판단 기준, 명예와 이익을 따르는 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를 가리킵니다. 이 나라는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나라가 아니라, 서로의 짐을 지는 나라입니다. 서로의 허물을 용납하고, 같이 씻고 같이 우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과거를 들추지 않으며, 오직 복음의 은혜로 서로를 바라보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외칩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 말은 곧,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답게 살라는 강력한 외침입니다. 복음을 진짜 믿었다면, 그 복음의 질서대로 살아야 한다는 명백한 권면입니다.
우리는 불의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우리는 더 이상 그 옛 모습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씻기운 자,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된 자, 하나님의 의를 전가받은 자로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상속자입니다. 이 상속은 결코 값싼 은혜 위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피로 값 주고 사신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그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도록, 삶의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서로를 고소하던 손을 내려놓고, 판단하던 입술을 다물고, 그리스도의 눈으로 서로를 다시 바라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이 땅 위에 세워진 하나님 나라의 작은 예고편입니다. 아직 완성되진 않았지만, 우리는 이 공동체 안에서 그 나라의 빛을 맛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탐욕이, 고소가, 음행과 술 취함이 당연하게 여겨진다면, 우리는 그 나라의 백성이 아니라, 세상의 방식에 속한 자들일 뿐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를 미혹에서 깨우기 위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미혹을 받지 말라.” 복음은 우리를 죄에서 자유하게 하지만, 그 자유는 육체의 기회로 삼으라고 주어진 자유가 아닙니다. 오히려 복음의 자유는 섬김의 기회로 바뀝니다. 우리는 이제 그 나라의 시민답게, 하나님을 닮은 사랑과 겸손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단순히 교리나 이론이 아니라, 삶의 방식입니다. 그 나라는 거룩한 복음의 삶을 요구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교회 안에서의 태도와 관계가 복음을 따라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전 4:20) 이 능력은 자기 의를 죽이는 능력, 자기 주장을 내려놓는 능력, 남을 판단하던 눈을 눈물로 바꾸는 능력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를 그 능력의 자리로 인도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땅의 교회가 세상과 다른 진짜 나라, 하늘의 질서를 따르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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