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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말씀 묵상

해바라기처럼 서서 - 평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노래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28.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시편 98:1)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긴 겨울이라도 결국 끝이 납니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어쩌면 역사의 이치이기도 합니다.
1945년 8월, 한반도는 해방의 기쁨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채 식기도 전에 38도선이라는 선 하나로 갈라졌고, 그 선은 이제 80년이 되도록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한 민족이 한 땅에서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남과 북으로 나뉘어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세월이 이토록 길어졌습니다.

성경에는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벨론 제국에 의해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가 되어 낯선 땅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은 강가에 앉아 울었습니다. 시편 137편은 그 슬픔을 이렇게 전합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눈물이었습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통곡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70년이 흘렀습니다. 한 세대가 통째로 지나간 시간이었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의 자녀가 태어나고, 그 자녀가 자라 어른이 되었습니다. 고향을 기억하는 노인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났고, 젊은이들은 바벨론에서 태어났기에 예루살렘을 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하신 말씀,
"70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아보겠다"는 그 약속이 마침내 이루어졌습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칙령을 내렸고, 포로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상상도 못 했던 방식으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을 통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시편 98편은 바로 그 감격 속에서 터져 나온 노래입니다.
"새 노래로 주님께 찬송하여라. 주님은 기적을 일으키는 분이시다." 새 노래란 단순히 멜로디가 새롭다는 뜻이 아닙니다. 새로운 경험, 새로운 역사, 새로운 기적 앞에서 터져 나오는 찬양입니다. 오래된 고통이 끝나고 새 시대가 열릴 때, 사람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노래입니다.

2000년대 초,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렸을 때의 일입니다. 강원도의 한 작은 마을에 살던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상봉 신청을 했습니다. 1950년 전쟁이 나던 해, 그녀는 스물두 살이었고 오빠는 스물다섯이었습니다. 오빠는
"곧 돌아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북쪽으로 갔고,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60년이 지났습니다. 할머니는 그 60년 동안 매년 오빠의 생일이면 밥상을 차렸습니다. 아무도 없는 빈 방에 상을 차리고, 혼자 앉아 오빠가 좋아하던 된장찌개를 끓였습니다.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눈물을 삼키며, 그렇게 60년을 살아왔습니다.

마침내 금강산에서 오빠를 만났을 때, 두 남매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주름진 손이 주름진 손을 잡았습니다. 젊은 청년이었던 오빠는 백발의 노인이 되어 있었고, 꽃다운 처녀였던 동생은 허리 굽은 할머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나눈 말은 단 한 마디였다고 합니다.
"살아 있었구나." 그 한 마디에 60년의 세월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한둘이 아닙니다. 한반도 곳곳에, 그리고 해외 동포들 사이에, 이처럼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십만 명입니다. 그들에게 분단은 역사 교과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도 계속되는 살아있는 상처인 것입니다.

수녀이자 시인인 이해인은 이 그리움을
"남과 북의 한겨레가"라는 시에 담았습니다. 그 시에서 그녀는 통일을 바라는 마음을 "해 아래 가슴이 타는 한 그루 해바라기"에 비유했습니다. 해바라기는 해를 따라 고개를 돌립니다. 구름이 끼어도, 비가 와도, 폭풍이 몰아쳐도 해바라기는 해가 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듭니다. 그것이 해바라기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통일과 평화를 향한 기도도 그래야 한다고 이해인 수녀는 노래합니다. 세상이 냉소적이어도, 정치적 현실이 암담해 보여도, 수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도, 해바라기처럼 그 소망을 향해 고개를 들고 서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리움조차 감춰두고, 오랜 나날 헤어져 산 남과 북의 한겨레가, 같은 땅을 딛고 같은 하늘 우러르며, 하나 된 나라에서 살게 하소서"라고 부르짖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막연한 감상이 아닙니다. 바벨론 강가에서 70년을 기다린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가 결국 응답되었듯이, 이 간절한 기도도 언젠가 응답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2019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었습니다. 1919년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을 선포한 지 꼭 한 세기가 되는 해였습니다.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선열들이 꿈꾸었던 나라,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조국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멈추지 않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때가 되면 이루어집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누가 그것을 예상했습니까? 동독과 서독의 시민들이 맨손으로 벽을 허물고 서로를 끌어안던 그 밤을, 불과 몇 달 전까지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일어났습니다. 역사는 그렇게 흐릅니다.

시편 98편의 시편 기자는 노래합니다.
"주님께서 오신다.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며, 뭇 백성을 공정하게 다스리실 것이다." 이 찬양은 단순한 종교적 감흥이 아닙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어떤 제국도, 어떤 이념도, 어떤 장벽도 영원하지 않다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도 이루실 것이라는 소망의 노래입니다.

분단 80년의 세월이 쌓였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포로들이 70년을 기다렸듯이, 우리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아니, 기다리는 것을 넘어서 해바라기처럼 그 방향을 향해 서 있어야 합니다. 가슴이 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새 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언젠가 그날이 올 것입니다. 남과 북의 한겨레가 같은 땅을 딛고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온 땅이 함성을 터뜨리는 그날이 올 것입니다. 그날에 우리는 비로소 새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래 기다렸기에 더욱 간절하고, 더욱 아름다운 그 노래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