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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으로

행복을 오래 누리는 방법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6. 5.

황홀한 행복을 오래 누리는 방법은 전철의 레일처럼 나무들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통하는 마음이라 하여 정신없이 다가서지는 마십시오. 거리 없이 섞이지는 마십시오.

우주와 우주 사이에는 존경과 설레임만 가득하여도 천국입니다.

풀잎에 맺힌 이슬은 돋는 해를 잠깐 바라보고 사라지지만 우리의 내일은 또 눈떠 맞는 행복입니다.

사람은 가장 명예로운 자연임에도 구속을 배우고 곧잘 강요합니다.

동서남북의 사 방향은 거리가 적으나 많으나 항시 같듯

우리의 마음도 멀든 가깝든 내 마음만은 사철 푸른 오래도록 같은 빛이어야 합니다.

진실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어미 닭이 품는 알처럼 마음의 부화를 먼저 깨쳐야 합니다.

사람의 손이 타는 연약한 동물은 다치거나 쉽게 생명을 잃듯 사람 역시 사람으로 인해 쉽게 다칠 수 있습니다.

거리의 필요성을 깨우치지 못하고
다만 눈앞에 보이는 것들로는 아쉬움의
이별은 몸서리치게 줄달음하여 옵니다.

서로가 오래 바라보면서 기쁨 충만한 신뢰감에 스스로 가슴 흠씬 젖어 작은 부분을 크게 지켜 내는  행복을 만들고

언제고 그런 마음이 봄처럼 따뜻하게 머물 수 있다면

당신의 수줍도록 작게 열린 쪽문으로
달빛 스미듯 곱게 들어오는 나뭇잎
사각이는 한 걸음 있을 것이며

그럴 때 사람의 조물주인 하나님은 되려
당신에게 있는 좋은 마음 하나 그렇게 닮고 싶어할 것입니다.

- 좋은 생각

물과 햇빛과 바람이 적당히 어우러져야 꽃이 피듯, 관계에도 ‘
적당한 거리’라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요즘 우리는 ‘가까움’을 진심의 척도라 여기고, 곧바로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것을 사랑이라 착각합니다. 그러나 마음은 급히 부치면 덜 익은 편지 같고, 너무 바싹 붙으면 오히려 서로를 태워버리는 불꽃이 되곤 합니다.

“황홀한 행복을 오래 누리는 방법은 전철의 레일처럼, 나무들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이 문장에서 우리는 진정한 사랑의 형태를 배웁니다. 사랑은 감정의 열기가 아니라, 머물 줄 아는 지혜입니다. 나무가 서로에게 그림자가 되어주기 위해서도 적당한 거리를 지켜야 하듯, 사람과 사람 사이도 그래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마음이 통하면 그 즉시 하나가 되어야 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짜 마음이 통할 때는, 거리조차 안심이 됩니다. 가까이 있지 않아도, 함께 있다는 믿음이 마음속에서 자랍니다. 그러한 신뢰는 조용히 시간을 익히며 피어나는 꽃 같습니다. 계절을 기다리듯, 조급하지 않고 묵묵히 바라보며 사랑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미 닭이 알을 품을 때는 조급하지 않습니다. 생명의 부화를 위해서는 정해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을 어기는 사랑은 아직 부화되지 않은 마음을 쪼개는 일이며, 결국 다치게 하고야 맙니다.

사람은 그 자체로도 연약한 존재입니다. 풀잎 위 이슬처럼, 찬란하지만 한순간일 수 있는 감정의 생명력.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
지혜’를 주셨습니다. 사랑은 머무는 일이며, 관계는 거리를 익히는 기술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고…” (고린도전서 13:4)

이 오래 참음은 다가감 이전의 기다림이며, 적당한 거리에서 피워지는 신뢰입니다. 사랑은 가까움으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멀리서 지켜보며 키워지는 ‘
같은 마음’에서 자랍니다. ‘동서남북의 사 방향은 거리가 적으나 많으나 항시 같듯’ 우리도 그러한 한결같음을 배워야 합니다.

당신의 작은 문 하나, 수줍게 열린 그 문틈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 같은 사람, 그리고 하나님의 시선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기를, 지나친 소유욕이 아닌 섬김과 기다림으로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진정한 사랑은 닮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도 당신의 그 따뜻한 마음을 닮고 싶어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천국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저 거리 두기를 배운 마음들 사이에, 조용히 머물고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