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다섯 시, 인력시장에는 이미 수십 명의 사내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겨울도 아닌데 다들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서 있었습니다.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공사가 끊긴 지 벌써 넉 달째, 그 틈에서 한 남자가 가랑비를 맞으며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그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둘 흩어졌고, 그는 빈손으로 언덕길을 걸어 내려왔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어린 자식들과 초라한 밥상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는 매번 그 밥상 앞에서 한숨을 삼켰습니다. 자신이 싫어서 거울조차 보지 않은 지 오래였습니다. 아내는 지난달부터 시내의 큰 음식점에서 설거지와 서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하지 못하는 몫을 아내가 대신 짊어진 것입니다.
그날 오후, 그는 다시 집을 나섰습니다. 주인집 여자와 마주칠까 봐 발소리조차 죽였습니다. 집세가 밀린 지 여러 달,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저녁 무렵 오랜 친구를 만나 일자리를 부탁했지만, 친구가 건넨 것은 일자리가 아니라 삼겹살 한 접시와 소주 한 병이었습니다. 취기와 자괴감을 함께 안고 산동네 언덕길을 오르는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골목에 들어서자 딸아이가 뛰어나와 반겼습니다. "아빠! 엄마가 오늘 고기 사왔어. 아빠 오면 해먹는다고 아까부터 기다렸단 말이야!" 늦은 시간인데도 아내는 분주히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사장님이 애들 갖다주라고 고기를 싸주셨어요. 우리 준이가 며칠 전부터 고기반찬 노래를 불렀는데, 어찌나 고맙던지요." 남편은 왠지 마음이 서글퍼졌습니다. "집세도 못 내는 처지에 고기 냄새 풍기면 주인 볼 낯이 없잖아." "저도 그게 마음에 걸려서 이제야 준비한 거예요. 열한 시 넘었으니 다들 주무시겠죠." 아이들은 불고기 앞에서 입이 함박만 해졌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내의 얼굴에도 오랜만에 웃음이 번졌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고기 몇 점을 입에 넣었습니다.
잠시 후 그는 마당으로 나와 달빛이 내려앉은 수돗가에 쪼그려 앉았습니다.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내가 가져온 고기는 음식점 사장이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손님들이 남기고 간 접시에서 급히 챙긴 것이었습니다. 그 증거로, 고기 속에는 누군가 씹다 버린 껌이 노란 종이에 싸인 채 섞여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볼까 봐 얼른 그것을 집어 삼켰습니다. 아픈 속을 감추고 행복하게 웃던 아내의 마음이 무너질까 봐,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 젊은 부부들은 종종 이렇게 반응합니다. "우리는 저 정도로 가난하지 않으니 상관없는 이야기 아닌가요?" 그러나 이 이야기의 핵심은 가난이 아닙니다. 핵심은 상대방의 아픔을 대신 짊어지려는 마음입니다.
결혼 3년 차 부부인 지훈과 수아의 이야기입니다. 지훈은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회사가 어려워져 반년째 구직 중이었습니다. 수아는 회사를 다니며 생활비를 혼자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지훈이 오래 준비한 면접에서 또 떨어졌다는 문자를 받은 날, 수아는 퇴근길에 그가 좋아하는 냉면집에 들러 포장을 해왔습니다. 사실 그날 수아의 통장에는 카드값이 빠져나가고 남은 돈이 만 원 남짓이었습니다. 수아는 회사 탕비실에 남아 있던 컵라면으로 저녁을 대신하고, 정작 자신의 몫은 사지 않은 채 지훈 앞에 냉면 한 그릇을 내놓았습니다. "오늘 회사에서 회식이 있어서 배불러." 거짓말이었습니다. 지훈은 그 말을 믿고 냉면을 다 먹었습니다. 나중에서야 지훈은 그날 수아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동료의 말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도 '껌 씹힌 고기'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배려 뒤에는 언제나 감춰진 눈물이 있습니다. 행복한 부부란 이 눈물을 서로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쓰는 두 사람입니다.
"자기 입에 고기 한 점이라도 더 집어넣으려고 눈을 부라리는 사람은 맛볼 수 없는 행복입니다." 이 문장은 결혼 생활의 본질을 정확히 찌릅니다. 신혼 초, 많은 부부가 크게 싸우는 지점은 사실 돈이나 시댁, 처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더 손해 보는 것 같다"는 감정에서 시작됩니다. 누가 더 희생했는지를 계산하기 시작하는 순간, 사랑은 거래로 변질됩니다.
반면 이야기 속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게 계산서를 내밀지 않습니다. 아내는 부끄러운 고기를 자랑스러운 척 내놓았고, 남편은 그 부끄러움을 눈치채고도 아내를 탓하지 않고 조용히 삼켰습니다. 서로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한 무언의 합의, 이것이 바로 결혼이라는 관계의 본질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부부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은 단순합니다. 배우자가 힘든 하루를 보낸 날, 나는 그 사람의 자존심을 지켜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나는 상대의 부족함을 지적하기보다, 그 부족함 뒤에 숨은 눈물을 먼저 보려고 합니까? 나는 손해 보는 쪽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이야기 속 부부는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집세도 밀렸고, 고기 한 근 살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마음 하나로 그들은 무너지지 않고 그 겨울을 함께 건너갔습니다.
결혼은 완벽한 두 사람이 만나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한 두 사람이 서로의 부족함을 껴안아 주기로 결심하는 매일의 선택입니다. 오늘 하루도 배우자를 위해 눈물 한 방울 삼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한 부부입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립보서 2:4 참조)
'행복한 동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행복한 동행 - 침 한 방울의 무게 (0) | 2026.08.06 |
|---|---|
| 폭풍우를 만나거든, 일단 피하고 보라 (1) | 2026.08.05 |
| 이게 다 당신 덕분이야 - 항상 배우자에게 감사하라 (1) | 2026.08.04 |
| 둘이 걷는 길 (1) | 2026.08.04 |
| 부부, 물레방아 소리에 익숙해지는 법 (0) | 2026.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