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한 지 삼 년쯤 된 신혼부부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회사에서 힘든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날이면 말수가 줄었습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이 답답해서 자꾸 말을 걸었습니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왜 말이 없어?" 남편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아무 일도 없어. 그냥 좀 조용히 있고 싶어." 그 한마디에 아내의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사소한 말다툼 끝에 각자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 어색한 침묵 속에서 아내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 왜 이렇게 됐을까?" 남편이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싫어서가 아니야. 그냥... 그날은 내 마음에 먹구름이 낀 거였어." 그 말을 듣고 아내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남편의 침묵이 자신을 향한 거부가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날씨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부부로 살아간다는 것은 사계절을 함께 통과하는 일과 같습니다. 볕이 좋은 날도 있지만, 바람이 매섭고 하늘이 잔뜩 흐린 날도 찾아옵니다. 문제는 흐린 날이 온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그 흐린 날을 어떻게 지나갈 것인가 하는, 삶의 기술에 있습니다.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가 이 지혜를 잘 보여줍니다. 건강검진을 받으러 간 한 노인에게 의사가 물었습니다. "연세에 비해 정말 건강하십니다. 무슨 비결이라도 있으십니까?"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결혼할 때부터 지켜온 약속이 하나 있지요. 제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아내가 부엌으로 가고, 아내가 저기압이다 싶으면 제가 밖으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제가 산책을 참 많이 했더군요."
이 짧은 대답 속에 부부생활의 오랜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감정이 격앙된 순간, 서로 가까이 붙어 있으면 반드시 폭풍우를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는 잠시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지혜입니다. 배우자가 날카로운 말을 쏟아낼 때, 그 자리를 굳이 지키며 맞받아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감정을 다스리며 차분히 대화할 훈련이 되어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 그렇지 못하다면 일단 감정이 끓어오르는 그 순간만큼은 피하는 편이 낫습니다.
자리를 비키는 것에는 두 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첫째, 감정을 식힐 시간을 벌기 때문에 정면충돌을 피할 수 있습니다. 둘째, 그 시간 동안 자기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얻게 됩니다. 산책을 나선 노인이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도 자신이 왜 화가 났는지, 정말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었는지를 곱씹었을 것입니다.
감정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매일 좋은 기분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때로는 감정이 격해져서 스스로도 주체하기 힘든 순간이 옵니다. 그 순간 감정이 시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면, 반드시 후회할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감정은 우리가 다스릴 대상이지, 우리를 다스리게 두어서는 안 될 대상입니다.
한 목회자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어떤 일로 감정이 조금 격앙되어 있을 때면, 아내는 상황을 알아채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아내의 침묵이 답답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 침묵 속에 담긴 배려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아내가 침묵하면 그도 더 이상 말을 보태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두 사람이 부부싸움을 면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습니다. 저기압을 조용히 피해준 아내야말로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저기압은 영원하지 않고, 그 뒤에는 반드시 화창한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대화 방식도 자연스럽게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입을 다물기만 하던 아내가 이제는 하나하나 짚어가며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도 그런 변화에 당황하지 않고, 부부로 함께 살아온 세월만큼 쌓인 지혜로 아내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알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제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문제를 풀어가는 대화법을 찾아갔습니다.
신혼의 시기를 지나는 부부들에게 이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배우자가 오늘 유난히 예민하다면, 그것이 나를 향한 공격이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저기압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 저기압 속으로 함께 뛰어들어 싸움을 벌이기보다, 잠시 물러서서 기다려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왜 그렇게 예민해?"라고 다그치는 대신, "지금은 잠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구나" 하고 마음의 공간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감정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다만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관건입니다. 폭풍우가 몰아칠 때는 일단 피하고, 감정이 가라앉은 후에 차분히 서로의 마음을 나누십시오. 그렇게 흐린 날들을 지혜롭게 통과한 부부에게는, 반드시 더 깊고 단단한 화창함이 찾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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