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세기 2:7)
태초에 하나님은 사람을 두 단계로 창조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흙으로 빚으심이요, 두 번째는 그 흙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입니다. 전자는 형체를, 후자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외형과 본질, 모양과 능력, 껍질과 내용으로도 설명될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말을 단순히 외모나 도덕적 이미지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형상(image)”과 “하나님의 모양(likeness)”을 구분하여 말씀하십니다 (창1:26). 또한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 5절에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을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이는 흙으로만 지어진 자, 곧 외형만 있고 생명의 기운이 불어넣어지지 않은 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단지 종교적 행위로 ‘경건한 모양’을 갖추고 있으나,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령의 숨, 곧 성령의 능력 없이 살아가는 자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단지 외형이 아니라 본질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진정한 인간은 ‘생령’으로 지음 받은 자이며, 이는 곧 하나님의 성령이 그 안에 머물러 있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경건한 모양만을 가진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셨고, 살아 있는 율법 자체로서 이 땅에 오신 ‘참 사람’ 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45은 이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고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예수님은 ‘경건의 능력’으로 충만하신 분이었고, 성령의 열매로 자신을 드러내신 분이었습니다. 그분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완성되어 있었으며, 이는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이상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창조의 첫 단계인 ‘흙’에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져 가는 중입니다. 성령의 숨결로 새로워지고, 마음과 삶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3~24절에서는 “오직 너희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단지 외적 신앙생활의 반복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져 가는 ‘내면의 창조’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삶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분노와 욕망, 자기중심성과 이기심 가운데 살아가며, 흙으로 지어진 존재에 머물고자 하는 유혹에 시달립니다.
히브리어로 ‘코(Aph)’는 분노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이 곧 분노 위에 하나님의 영을 덧입히신 것임을 시사합니다. 하나님의 생기는 우리 안에 있는 분노를 다스리게 하는 힘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분노를 덮으신다”는 이 묵상은 가정과 공동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버지는 자녀에게, 지도자는 연약한 자들에게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노를 성령의 은혜로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살아가는 자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고와 연단 속에서 이뤄지는 축복입니다. 창세기 3장 19장은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형상을 되찾아가는 유일한 통로로서의 권면입니다.
우리의 삶은 성령 안에서 날마다 ‘경건의 능력’을 이뤄가는 여정이어야 합니다. 그 능력은 말과 외형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과 인내, 성령의 열매로 드러납니다.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생령’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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