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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사는 삶

A.W. 토저의 예언적 통찰을 통해 본 오늘의 교회와 사역자들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1. 1.

A.W. 토저(Aiden Wilson Tozer, 1897–1963). 그는 정규 신학교육 한 번 받지 않았지만, 한 세기를 넘어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영혼에게 불을 붙이는 ‘하늘의 사람’으로 남아 있습니다. 토저는 세속의 지식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더 사모했고, 형식보다 본질을, 제도보다 임재를, 말보다 침묵 속의 음성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진리를 깨달았고, 그 영적 통찰을 설교와 글로 남겼습니다.

그가 한 시대를 통찰하며 남긴 말은 오늘을 향한 예언처럼 들립니다. “
새로운 시대의 사역자는 단정한 회당장도, 사례금만 받는 제사장도, 세련된 언변으로 사람을 끄는 설교자도 아니다. 그는 선지자의 영성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토저는 ‘새로운 시대의 종교 지도자’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보고, 그분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을 듣는 자입니다. 그는 문명사회의 허울 좋은 웃음을 부정하고, 세상이 ‘소중하다’ 여기는 것들을 과감히 제거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외치며, 타협하지 않고, 진리 아닌 것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그의 외침은 때로 거칠고 불편하게 들릴지라도, 그 안에는 하나님의 불이 있습니다.

오늘날, 토저가 바라던 그 ‘
들사람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화려한 강단이나 세련된 설교 대신, 성령의 음성을 듣고 하늘의 불로 말합니다. 그들의 영성은 엘리야의 것과 같고, 사도 요한의 것과 같습니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가식이 없습니다. 세상적 지식이나 프로그램보다, 하나님 한 분만을 붙잡습니다. 이들은 세상의 체질을 바꾸려 합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외치며,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세대를 향해 결단을 촉구합니다. 이들의 메시지는 듣기에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바로, 죽은 심령을 깨우는 하나님의 경고음입니다.

성령을 주님으로 인정하십시오. 토저는 성령을 단지 교리의 한 항목으로 두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성령은 인격적 주님, 곧 “
성부와 성자와 함께 예배받으실 하나님”이었습니다. 니케아 신경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또한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신 생명의 주, 성령을 믿습니다. 그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고백을 하면서도, 성령을 실제 삶 속에서는 무시해왔습니다. 성부와 성자는 찬양하면서, 성령은 “조용히 계신 분”으로 여겼습니다. 토저는 바로 이 점을 아프게 지적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
새 시대의 사역자는 성령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그들은 성령을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찬미의 대상이신 하나님’으로 인정합니다. 그들의 설교와 삶은 오직 성령의 말하게 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이 아니라,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고전 2:13)

신비는 곧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신비주의를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
신비’를 제거하면, 남는 것은 단지 윤리와 규범뿐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인간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 그 자체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연인의 사랑을 말로 정의할 수 있습니까? 사랑은 설명이 아니라 경험으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이론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마음에 부어지는 실재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심전심,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지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토저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그리스도를 영으로 느끼라. 네 감성으로, 네 영혼으로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라. 그 누구도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없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외면하신 목자들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그들은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며, 내일도 오늘같이 즐기자 하는 자들이라.”(사 56:10~12) 오늘의 교회가 이 말씀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토저는 경고합니다. 새 시대의 선지자들이 일어날 때, 그들의 외침 앞에서 전통적 사역자들은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회당장처럼 체제에 순응하고, 제사장처럼 안락한 종교를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타협하지 않는 선지자의 심령,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하늘의 사람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다시 선지자를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 움직이는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음으로 보고 말하는 사람, 사람의 지식보다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토저처럼 하나님을 ‘
만나기를 갈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 고요한 묵상 속에서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그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주여, 우리 시대에 다시 선지자의 영을 부어주소서. 세상의 영광을 거부하고, 오직 주님의 임재만을 사모하는 사람들로 일으켜 주소서.

토저는 세상을 떠난 지 오래지만, 그의 영적 외침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의 시대를 향한 통찰은 지금 우리의 거울이 됩니다. 그가 바랐던 새로운 시대의 사역자는 멀리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서 깨어나야 할 ‘
새 사람’입니다. 그는 말과 프로그램이 아니라 불과 눈물과 사랑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 세상을 거스르더라도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무릎 꿇는 사람입니다.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린도전서 2:13) 성령이여, 이 시대에 토저가 말한 ‘새로운 선지자의 사람들’을 일으켜 주소서. 그 불이 우리 마음에도 타오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