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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사는 삶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서두르는 인간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1. 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사무엘상 15:22~24)

하나님의 인격적 특성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
오래 참으심’입니다.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언제나 완전하며, 그분의 인내는 우리의 이해를 넘어섭니다. 반면, 마귀의 특성은 정반대입니다. 그는 언제나 급하게, 서둘러, 사람을 조급하게 만듭니다.

물론 하나님도 때로는 촉구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예외적인 경우, 사랑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내쫓으시고, 바리새인들을 향해 “
화 있을진저!”라 하신 것도 사랑의 분노였습니다. 그분은 분노하셨으나, 여전히 사랑이신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인간의 성질과 달리, 죄와 불의를 향한 거룩한 반응이었지, 성급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때로 우리에게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즉각적으로 징계하신다면, 아마도 우리는 곧잘 돌이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즉시 책망하지 않으시고 기다리십니다. 그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깨닫게 되지만, 동시에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잘못된 길을 인식하지 못하고 방황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인내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분은 조급하게 일을 이루시는 분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를 완전하게 빚어 가시는 분입니다.

우리 민족은 본래 인내심이 강한 민족이었지만,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
빨리빨리’를 외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우는 단어가 “빨리빨리”라는 말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우리는 빨리 해야 직성이 풀리고, 빨리 이루어야 마음이 놓입니다. 그러나 조급함은 언제나 깊이와 정교함을 잃게 만듭니다.

이 성향은 단순히 경제나 문화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에도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대신, 보이는 것을 추구하게 만듭니다. 믿음의 세계를 눈에 보이는 성공, 눈에 보이는 숫자, 눈에 보이는 결과로 바꾸어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물량주의와 현시주의라는 비성경적 가치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교회의 크기, 사람의 수, 헌금의 액수로 하나님의 나라를 평가하려고 합니다.

조급한 신앙은 헌금과 전도의 자리에서도 드러납니다. 일부 목회자들은 헌금 작정을 강요하고, 분위기에 휩쓸리게 만듭니다. “
지금 결단하십시오!” “천만 원 단위부터 작정합시다!” 순간의 감정과 분위기에 이끌려 결단하도록 촉구합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현실적인 고통이 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서 후회와 두려움에 시달리는 성도들, 남편에게 말도 못 하고 속을 끓이는 아내들, 억지로 헌신을 감당하다 지쳐버린 신앙인들…

하나님은 그런 헌신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억지로, 강요로, 부담으로 드려진 제물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가 아닙니다. 시편 50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라.”(시 50:13~14) 하나님은 감사로 드려진 제사, 사랑에서 비롯된 헌신을 받으십니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있는 ‘
성가족 성당(La Sagrada Familia)’은 1882년 가우디가 설계했지만, 아직도 완공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100년, 200년이 더 걸릴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조급한 문화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올해 안에 완공을 보고 싶고, 당장에 결과를 내야 안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과보다 과정을 보십니다. 사람들은 오직 결과로만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순종했는가를 보십니다.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거나, 인격을 훼손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일을 사람의 일로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서서히 자라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밀가루 세 말 속에 넣은 한 조각 누룩과 같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게, 그러나 분명히 자라납니다. 그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단지 그분의 인내에 참여할 뿐입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씨를 뿌렸다면, 내일 바로 결실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한 사람은 밭을 갈고, 한 사람은 씨를 뿌리며, 또 다른 사람은 추수합니다. 우리의 일은 ‘
결신’을 만들기 위한 조급한 전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내에 동참하는 전도입니다.

사랑으로 하지 않는 모든 일은 율법입니다. 사랑이 없는 모든 헌신은 율법입니다. 사랑이 빠진 봉사는 인간의 욕망을 채우려는 종교적 행위일 뿐입니다. 따라서 목회자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돕는 사람, 그 사랑 안에서 자라가도록 오래 참는 본을 보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조급함은 마귀의 속성입니다. “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육신의 욕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손을 통해 일하시지만, 결국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제사는 조급하지 않고, 결과에 매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오래 참는 믿음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신뢰하고, 즉각적인 결과가 없어도 흔들리지 않으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 그가 바로 하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
주여, 서두르지 않게 하소서. 당신의 때를 기다리며, 오래 참으시는 인격을 닮게 하소서. 사랑으로 하지 않는 모든 일이 율법임을 기억하게 하시고, 결과보다 순종을 기뻐하시는 당신의 마음을 배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