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245 이별이 아닌 연합 어느 날 문득, 내 안에 분열된 두 ‘나’를 마주했습니다. 하나는 예수 안에 있는 ‘나’였고, 다른 하나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역사 속에 덩그러니 놓여진 ‘나’였습니다. 전자는 본래 하나였던 나, 창세 전부터 그분과 함께 묵시 안에 있었던 존재로서의 나이며, 후자는 그 하나에서 물리적으로 떨어져 나온 듯 보이는, 그러나 여전히 그 하나의 본질을 잃지 않은 존재로서의 나였습니다. 이 간극을 이별이라 불러야 할까요? 아닙니다. 이건 이별이 아닙니다.우리는 이별을 상실이라 생각하고, 그것에 따라 고통을 느낍니다. 그러나 사랑은 단지 공간적 거리에 따라 끊어지는 관계가 아닙니다. 사랑이란 그 자체로 주체성을 갖습니다. 떨어져 있어도 관계는 지속될 수 있고, 심지어 더욱 명확히 드러나기까지 합니다. 이별은 관계의 .. 2025. 5. 20. 물질의 시대, 이름의 허상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익숙한 이 격언은 언뜻 보기엔 사람의 삶을 고귀하게 포장하는 말 같지만, 실은 이 시대의 깊은 병을 그대로 드러내는 왜곡된 사고방식의 표본입니다. 사람은 과연 ‘이름’을 남기기 위해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까? 이름을 남기기 위한 삶이 낳은 결과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라면, 그 격언은 더 이상 지혜가 아니라 경고가 되어야 합니다.이름을 남기겠다는 욕망, 곧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 본성 깊은 곳에 뿌리박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욕망이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서 작동할 때,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신을 위해 타인을 짓밟고, 세상을 파괴하며, 영혼까지 팔게 됩니다.누군가는 700원을 얻기 위해 이웃 할머니의 생명을 빼앗고, 누군가는 짜증 난다는.. 2025. 5. 20. 계륵을 버리고 독수리 등에 오르라, 옛 자아의 죽음과 새 생명의 비상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후3:5~6)우리는 참으로 만족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 외에는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3장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후 3:5).이것이 곧 하나님의 백성, 천국 백성의 정체성입니다. 이 땅의 그 어떤 성취와 인정도, 심지어 도덕적인 열심이나.. 2025. 5. 20.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 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1:1, 20~23)인간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그 결과로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고,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형상.. 2025. 5. 20. 이전 1 ··· 49 50 51 52 53 54 55 ··· 6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