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시느니라.”(사무엘상 16:7)
우리는 흔히 "좋은 성품"을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여깁니다. 따뜻한 말씨, 친절한 태도, 남을 배려하는 몸가짐. 이런 모습들을 보고 "저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다"라고 쉽게 단정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진실을 말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옛날 한 사람이 조용히 은둔하던 현자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야말로 저의 스승이 되실 분입니다. 저는 이제껏 이렇게 친절하고 따뜻하며 명망 높은 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제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그 말을 들은 현자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친구여, 그대가 얼마나 위험한 생각을 하는지 아는가?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들이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 바로 그대가 말한 성품과 명망이라네. 만일 그것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세상의 악인들은 모두 성자가 되고 말 것일세.”
우리는 얼마나 자주 사람의 겉모습과 성품만으로 그 사람의 본질을 평가하곤 합니까? 그러나 외적인 친절과 포장된 명망은 진짜 덕에서 흘러나오는 열매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교묘한 가면이 되어 진실을 가리기도 합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보면, 이런 인간의 허상을 날카롭게 찌릅니다. “도를 잃은 후에 덕이 나오고, 덕을 잃은 후에 인이 나오며, 인을 잃은 후에 의가 나오고, 의를 잃은 후에 예가 생긴다.” 겉으로 보이는 예절과 명망은 사실 가장 근본적인 ‘도(道)’에서 멀어진 흔적일 수 있습니다. 즉, 예법이 성행할수록 그것은 이미 사람의 마음이 근본에서 멀리 떠났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사람을 분별해야 할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시느니라”(사무엘상 16:7). 사람의 친절한 성품과 좋은 평판은 눈에 잘 띄지만,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그 마음의 중심입니다. 아무리 부드럽고 따뜻해 보여도, 그 마음 깊은 곳이 탐욕과 자기중심으로 가득하다면 그것은 결국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겉모습은 서툴고 무뚝뚝해 보여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진실한 사랑을 품은 사람이라면 그의 삶은 반드시 열매로 증명됩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누구보다 친절하고 경건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중심은 위선과 교만으로 가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화려한 종교적 성품을 "회칠한 무덤"(마태복음 23:27)이라 부르셨습니다. 겉은 아름답지만 속은 썩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묵상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사람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는가? 나 자신은 어떤 성품으로 사람들 앞에 서 있는가? 혹시 친절과 좋은 평판을 쌓는 데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정작 하나님 앞에서 중심을 지키는 일에는 소홀하지는 않은가?"
진정한 덕은 억지로 만들어내는 성품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서, 은혜로 새로워진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무가 좋으면 열매도 좋고, 나무가 나쁘면 열매도 나쁘니라”(마태복음 12:33).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꾸며진 성품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된 마음입니다. 중심이 바뀌면 삶의 태도와 성품은 저절로 따라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열매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내면이 진실한 도와 덕 위에 세워져 있는지 날마다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마태복음 7: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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