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린도전서 3:9)
이것은 혼자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고 인정하려면 더 이상 방법을 묻지 말고 자신만의 창의성 속으로 한 걸음 내딛어야 합니다. 당신이 목숨을 건 '주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할 때 청사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비록 인생의 불완전함이나 어려움에 대해 불평을 하더라도 세상을 만든 솜씨만큼은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었듯 우리도 모두 창조자이며 내면에 있는 신성한 곳을 두드리면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잘 파악하고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을 때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목적만 분명하다면 인간이 창조해내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이올린스트 프리츠 크리슬러의 연주를 들은 한 여자거 그에게 달려가 외쳤습니다. "당신처럼 연주할 수만 있다면 목숨이라도 내놓겠어요."
그러자 크리슬러가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처음에 저도 그랬습니다." 당신이 갈망하는 것에 다다르기 위해 무엇을 창조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창세기의 선언은 너무나 익숙하여, 그 깊이를 자주 놓치곤 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 이 단순한 한 구절은, 모든 피조물의 존재 이유와 방향성을 말해주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 창조의 이야기를 과거의 사건으로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로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창조가 여전히 지금도, 우리를 통해 계속되고 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빚으셨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기를 지닌 ‘공동 창조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린도전서 3:9) 이 말씀은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는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도 ‘창조’는 끝난 일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입니다.
창조는 외적인 결과가 아니라, 내적인 간절함에서 비롯됩니다. 누군가 “당신이 목숨을 걸 만큼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즉시 대답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 그것을 찾고 있는 여정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혼돈과 공허 가운데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빛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 자체를 청사진으로 삼으셔서 창조를 하셨습니다. 말씀하셨기 때문에 존재하게 되었고, 그것이 창조의 본질이었습니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마음 깊이 있는 간절함이 언어가 되고, 그 언어가 방향이 되며, 결국 그 방향이 창조의 실체로 드러납니다.
프리츠 크리슬러의 일화는 그것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목숨이라도 바치겠다’는 고백은 단지 감탄에서 비롯된 말이 아니라, 그 간절함이 없다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깨달음입니다. 크리슬러는 그 마음으로 시작했고, 마침내 창조의 경지에 이른 것입니다.
불평이 아닌 창조의 자리로 걸어가십시오. 우리는 종종 삶의 불완전함 앞에 주저앉습니다. 왜 내 환경은 이 모양일까? 왜 나에게는 이런 일이 반복될까?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를 보십시오. 혼돈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위에 질서를 세우셨고, 어둠을 분리하여 빛을 드러내셨습니다. 창조는 문제의 부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와 혼란, 결핍의 한가운데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무엇인가를 새롭게 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수천 명을 먹이신 사건은 그분의 능력을 보여주는 기적이자, ‘없는 가운데서도 나누고 베풀면 창조된다’는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밖에 없어 보일지라도, 주님의 손에 들려지면 그것은 창조의 시작이 됩니다.
창조는 영감을 넘어 순종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영감’을 기다립니다. 무언가 내게 와 닿고, 감동이 되어야 움직이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먼저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신 후에 빛을 보셨습니다. 순서가 반대입니다.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말하고 움직이는 것이 창조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1) 믿음으로 창조된 삶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확고한 실재를 품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창조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기도하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에 발맞춰 걸어가는 여정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 창조입니다.
당신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주님의 마음과 맞닿아 있다면, 더 이상 방법을 묻지 말고 창조하십시오. 당신 안의 영혼 깊은 곳에서 울리는 갈망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새 일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세상은 당신의 순종과 창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작아 보여도, 한 사람의 창조는 수많은 생명에 영향을 끼칩니다.
빛이 있으라. 이 한 마디의 선언으로 세상이 시작되었듯이, 당신의 삶에도 그 첫마디를 말하십시오. “내 삶에, 주님의 뜻대로 창조가 있으라.” 당신의 창조는 바로 그 순간 시작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에베소서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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