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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 - 영광이 그에게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2.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갈라디아서 1:4~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의 이 짧은 고백 속에는 인간의 실존, 복음의 본질, 구원의 전모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 가운데 잉태되어 죄 가운데 태어난 존재입니다. 우리의 시작은 의로움이 아니라 죄 안에서의 태어남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본성적으로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의 뜻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목적보다 자기의 목적을 앞세웁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죄는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존재의 방향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상태를 이렇게 말합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 2:3). “악에 익숙하여 선을 행할 수 없다”(렘 13:23)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안에서는 하나님께 돌아갈 가능성이 없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방향을 바꾸는 존재가 아닙니다. 스스로 깨닫지도 못하고, 스스로 회개하지도 못하고, 스스로 하나님께 순종하지도 못합니다. 이것이 복음 앞에서 우리가 반드시 인정해야 할 인간의 실존입니다.

십자가는 ‘
우리의 가능성’이 무너진 자리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첫머리에서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사실을 다시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기 몸을 주셨습니다. 이 말은 너무 익숙해서 쉽게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 말을 반복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잃어버린 것은 “십자가의 의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하셨다." 인간의 선함과 능력은 십자가 앞에서 무너지고,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과 예수님의 공로만이 남습니다.

자기 의를 붙드는 순간, 그리스도의 영광을 훼손합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이 빠진 문제는 단순한 행위주의가 아닙니다. 그들은 “
예수님을 믿는다”라고 말하면서도 내심 자기의 선함과 자격을 꼭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근거로 남을 판단하고 스스로를 높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사도권까지 공격했습니다. “저 사람은 예수를 핍박했던 자인데 어떻게 사도가 될 수 있는가?

그러나 이런 비판은 십자가의 진리를 전혀 모르는 말입니다. 사도가 사도 된 것은 그들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 때문입니다. 바울이 예수를 핍박할 때 사도들은 ‘
옳은 일을 했기 때문에’ 사도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사도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아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선함을 근거로 자신을 높이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나의 자랑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오직 예수님의 공로만을 드러냅니다.

십자가는 ‘
나를 부인하라’는 요구가 아니라 ‘내가 너를 전부 이겼다’는 선언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대가를 치러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소식이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모든 대가를 다 치르셨다는 소식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선하게 살아라”가 아니라 “너 자신을 포기해라”입니다. 자기 가능성, 자기 선함, 자기 의, 이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남아 있는 한 십자가는 결코 복음이 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자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몸을 주셔서 우리를 건지셨다면 그 사실을 아는 사람에게 반드시 나타나는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영광을 그에게 돌리는 삶”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자기 능력이나 선함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자기의 공로를 말하기보다 “나 같은 자를 건지시기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더 알고 싶어 합니다.

자기를 드러낼 여지가 없고, 자기의 선함을 자랑할 가능성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내막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전부 하셨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이 드러나는 가장 분명한 자리는 내 이름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자리입니다.

세상은 영광을 자기에게 돌리고 싶어 합니다. 사람의 본성은 자기를 돋보이게 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조차 자기 영광을 위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백합니다. “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이 고백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순종이 우리를 살렸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건졌고,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의 유일한 의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이 향해야 할 한 가지 목적은 분명합니다.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앞에 설 때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마지막 자랑이 무너져야 합니다. 내 선함, 내 헌신, 내 열심, 내 진정성, 내 신앙 경력, 내가 이룬 무엇… 이 모든 것을 내려놓으십시오. 십자가 앞에서는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만 유일합니다. 우리의 구원도, 우리의 변화도, 우리의 믿음도, 우리의 순종도, 모두 그분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바울처럼 고백하십시오. “
영광이 내게 아니라,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이 고백이 여러분의 삶과 신앙의 중심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