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갈라디아서 1:1~5)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열며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짧은 문장이지만, 이 고백 안에는 바울의 존재 전체가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을 설명할 때 사람의 기준이나 인정, 혹은 어떤 인간적 평가를 한 마디도 섞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온 것만 따릅니다. 그것이 바울이 자신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식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에서는 이 사실이 유독 강조됩니다. 왜일까요?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이미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바울이? 사도라고? 그 사람이 한 일을 모르느냐? 교회를 핍박하고 멸하려던 자였는데, 그런 사람이 사도라니 말이 되느냐?” 사실 인간 기준으로 보면 타당한 말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3년을 지낸 것도 아니고,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부터 따르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아 죽이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장 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려 하던 자였음을 너희도 들었거니와…” 바울의 과거는 사도의 자격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조건입니다. 그 누구도 바울을 사도로 인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의 과거는 너무 악했고, 너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에게서 난 사도가 아니다.” “그러니 너희가 내 과거를 보고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복음과 어긋나 있다.” “나는 오직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
갈라디아 교회의 근본 문제는 바울의 과거에 있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바울 안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바울을 보며 “하나님께서 저런 자를 사도로 세우셨다니!” “하나님은 정말 우리의 눈에 맞지 않는 일을 하시는구나.” “하나님은 사람의 조건이 아니라 그분의 뜻으로 일하시는구나.”라고 깨달았다면, 바울의 과거는 문제조차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바울을 보며 바울만 봤습니다. 바울을 일으키신 아버지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복음이 흐려졌습니다.
복음은 “사람으로 말미암음”을 완전히 배제하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드러나면 복음이 사라집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믿음을 가진 것도, 성도가 된 것도… 사람의 성향이나 의지나 행위로 된 것이 아닙니다.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바울이 사도가 된 것도 동일합니다. 그의 과거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사도가 될 수 없는 자”였지만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면 “사도가 되어야 하는 자”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뜻하셨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를 읽으며 더 깊이 돌아볼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사람을 바라볼 때 십자가의 시각으로 보는가? 아니면 여전히 그 사람의 과거와 성향으로 판단하는가?" 복음은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죽은 자였다.” “죽은 자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살리셨기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한다.” 이 시각이 열려 있지 않으면 우리는 갈라디아 교회처럼 늘 사람의 과거, 실패, 성향, 능력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면 복음이 희미해지고 교회는 사람 이야기만 가득해집니다.
아버지로 말미암아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을 세우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버릴 만한 사람을 들어 가장 귀하게 쓰시기도 합니다. 왜일까요?
아버지로 말미암아 되는 일을 통해 우리가 아버지의 일하심을 보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갈라디아 교회에 다시 심어줍니다. “내가 사도가 된 것은 인간적 증명 때문이 아니다.” “내 삶에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라.” “그분이 나를 세우셨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의 과거가 걸림돌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부족함, 연약함, 실수… 그리고 때로는 내 자신도 걸림돌 처럼여겨집니다. 하지만 복음은 부드럽고 단단하게 말합니다.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다. 아버지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죽은 자였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셨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니 바울의 과거도 문제가 아니듯, 우리의 과거도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도 아버지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자격 없는 자를 부르시고, 자랑할 수 없는 자를 통해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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