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이 심각하다는 증거는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건 당신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삶을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지는 당신의 선택입니다.
감금의 상태를 즐기면 감옥에 갇혀 있어도 놀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다운 순수한 유머 감각을 잃지 말고 매 순간을 살면 즐거운 삶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주변 환경을 보는 관점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90세 어르신이 남편과 사별하고 요양원으로 들어왔습니다. 훨체어에 앉은 어르신이 "여긴 정말 아름다운 곳이네요"라고 말하자 놀란 직원이 "어르신께서는 방금 도착하셨고 보이지 않으실 텐데 어떻게 아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어르신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난 내가 보고 싶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다우. 그래서 아름답게 보이는 거지." 우리도 이 어르신과 같은 마음으로 인생을 바라봐야 합니다.
믿음과 유머, 긍정적인 비전만 있다면 인생의 감금 상태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며 나아가 충만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감금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마음의 감옥입니다. 인간은 때로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도 끝없이 불평하고, 끝이 없는 욕망의 사슬에 매여 살아갑니다. 반대로 어떤 이는 철창 속에서도 감사하며 자유를 노래합니다. 그렇다면 감옥과 천국의 차이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 곧 ‘마음의 시선’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수차례 감옥에 갇혔지만, 그의 편지에는 절망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외칩니다. 감옥 속에서도 하늘을 바라보았고, 철문 너머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보았던 바울의 시선은 환경보다 더 큰 현실을 살아가는 법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어둡고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여긴 정말 아름다운 곳이네요"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말씀합니다.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차원의 진리를 바라보는 능력입니다.
요셉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지만 그곳에서도 하나님과 함께하였고, 감옥은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처럼 우리의 고난과 감금 상태도 하나님 안에서는 새로운 탄생과 변화의 기회가 됩니다.
감옥을 천국으로 바꾸는 힘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 곧 어디에 시선을 두느냐에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비교하고 욕망하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하노라" 말씀하시며 지금 이 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평안과 기쁨을 주십니다.
우리의 삶이 감옥처럼 느껴질 때,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은 십자가라는 가장 잔혹한 자리에서 인류를 위한 사랑과 용서를 이루셨습니다. 십자가가 가장 고귀한 구원의 문이 되었듯, 우리의 고난도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은혜의 자리입니다.
오늘도 감옥 같은 현실 속에서 천국을 노래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아름다움을 보기로 선택하십시오. 기쁨을 누리기로 결정하십시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그곳이 곧 천국입니다.
'마음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의 황금기는 지금입니다 (0) | 2025.06.16 |
---|---|
“덕분에”의 삶, 그 감사의 힘 (2) | 2025.06.16 |
근거 없는 비난은 멈춰라 (1) | 2025.06.15 |
상처받은 자, 서로의 등불이 되어주라 (1) | 2025.06.15 |
부득불,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 (1) | 2025.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