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세기 6장 1~8절
1 사람들이 땅 위에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그들에게서 딸들이 태어났다.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저마다 자기들의 마음에 드는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
3 주께서 말씀하셨다. "생명을 주는 나의 영이 사람 속에 영원히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살과 피를 지닌 육체요,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다."
4 그 무렵에 땅 위에는 네피림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와서 자식들을 낳으니, 그들은 옛날에 있던 용사들로서 유명한 사람들이다.
5 ○주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시고서,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 하셨다.
7 주께서는 "내가 창조한 것이지만, 사람을 이 땅 위에서 쓸어 버리겠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렇게 하겠다.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되는구나" 하고 탄식하셨다.
8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께 은혜를 입었다.
우리는 흔히 말씀을 들을 때, 그냥 흘려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순히 좋은 이야기나 위로의 글이 아닙니다. 한 단어, 한 문장이 모여 하나님의 뜻을 밝히는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을 때는 반드시 성경을 펴 놓고, 한 절 한 절 확인하며 들어야 합니다. 성경을 벗어난 말은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결국 사람의 말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묵상할 본문은 창세기 6장 1절부터 8절까지입니다. 이 말씀은 노아 시대,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기 직전의 상황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이해하려면 창세기 1장에서 주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후, 그들에게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단순히 인구가 많아지고 땅에 가득 차는 것을 뜻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계속 읽어 보면, 이 명령이 노아에게, 아브라함에게, 이삭과 야곱에게, 그리고 요셉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세우시고, 그를 통해 많은 자손과 공동체를 이루게 하십니다. 결국 이 흐름은 신약으로 이어져, 교회가 세워지고 지금 우리에게까지 다다릅니다. 즉,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은 단순한 번영의 구호가 아니라,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시는 언약이고, 오늘날 교회를 향한 약속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처음부터 수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창조하지 않으셨을까요? 왜 남자와 여자, 단 두 사람을 세워 놓으시고,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사람이 만드는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세우시는 공동체’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교회는 인간의 힘이나 노력으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이삭을 주셨고, 약속의 자손을 통해 언약을 이어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능력이 바닥날 때, 자신의 언약을 이루십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말씀의 흐름이 점점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것을 ‘점진적 계시’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드러내지 않으시고, 마치 어린아이를 가르치듯 조금씩, 그리고 점점 더 분명하게 당신의 뜻을 보여 주십니다. 또 성경 속 인물과 사건들은 단순히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주는 모형으로 주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노아의 방주, 아브라함의 제사, 출애굽 사건 등은 모두 예수님과 교회를 가리키는 그림자입니다.
이 모든 흐름 속에서 분명해지는 사실은, 교회는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교회는 단순히 모여서 예배드리고 친교하는 공동체를 넘어섭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르고, 또 “새 예루살렘”이라고도 말합니다.
본문이 놓여 있는 창세기 6장은, 세상이 온통 죄악으로 가득 차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한 사람, 노아를 붙드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어 가시는 장면입니다. 세상은 힘센 자와 거인들을 숭배했지만, 하나님은 그런 영웅들을 통해 일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은혜를 입은 자, 노아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열어 가셨습니다. 세상의 거인 숭배 문화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언제나 은혜로, 약속으로, 말씀을 붙드는 사람을 통해 이어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힘과 성공, 세상의 영웅들을 숭배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 흐름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수적으로 많아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복음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믿음의 공동체가 자라 가며,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 속에서 무엇을 붙들고 살아가야 할까요? 거인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숭배 문화를 따라가는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과 약속을 따라 번성하는 공동체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창세기 6장 말씀이 우리에게 던지는 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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