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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거인 숭배 문화에 젖어 있는 교회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8. 27.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세기 6:5)

창세기 6장은 홍수 심판 직전의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그 무렵에 땅 위에는 네피림이 있었다”(창6:4). 성경은 단순히 고대의 전설이나 신화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왜 세상을 심판하셔야 했는지, 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려는 것입니다.

네피림은 ‘
거인’이었습니다. 키가 크고 힘이 셌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들을 ‘용사’라 부르고 ‘유명한 자’로 칭송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서기보다는 스스로를 내세우고, 힘과 명예와 성공을 숭배하는 문화가 세상을 지배했다는 것입니다.

몸집이 크다고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쟁에서 용맹했다고 죄가 아닙니다. 이름이 알려졌다고 해서 그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자랑하고, 그것들을 인생의 성공 기준으로 삼으며, 하나님을 밀어내고 스스로 네피림이 되려 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실수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죄로 가득한 인간의 모습을 보시고 사랑 때문에 아파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힘과 성공을 숭배하는 것을 결코 두고 보실 수 없습니다.

오늘날도 이 네피림의 망상은 여전히 이어집니다. 고대에만 있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상은 지금도 힘 있는 자, 돈 많은 자, 유명한 자를 영웅시합니다. 잔인한 스포츠가 인기를 얻고, 수치스러운 사건을 일으킨 연예인과 정치인조차 여전히 존경과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사람들은 부와 권력을 가진 자를 부러워하고,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이것이 거인 숭배 문화입니다.

문제는 교회조차도 이 문화에 젖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큰 건물을 짓는 것을 성공의 표지로 삼고, 더 많은 사람을 모으는 것을 자랑합니다. 성도의 죄를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하기보다는, 듣기 좋은 말로 위로와 격려만을 늘어놓습니다. 마치 성경이 ‘
긍정적 사고 훈련서’나 ‘성공 전략 지침서’가 된 듯 사용됩니다. 하지만 설교는 결코 이 땅에서 잘 사는 법을 가르치는 강연이 아닙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간의 죄를 폭로하고, 동시에 십자가의 은혜로 위로하는 자리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첫 설교도, 세례 요한의 외침도, 사도들의 설교도 모두 “
회개하라”로 시작되었습니다. 죄 없는 인간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까 두려워 죄를 지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힘의 도구로 삼아 “당신도 성공할 수 있다”는 네피림의 망상을 조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사는 반대 방향으로 흐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을 빼앗으십니다.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약한 자를 들어 사용하십니다. 바울도 “
내가 약할 그 때에 강함이라”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힘의 논리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십자가는 거인 숭배 문화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이자, 새로운 창조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의 힘을 탐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더 큰 건물, 더 많은 사람, 더 눈에 띄는 프로그램을 자랑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죄인으로 드러나고, 동시에 그리스도의 은혜로 옷 입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붙들 힘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내가 약한 그 때에 곧 강함이라"(고후 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