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세기 6:3)
우리는 누구나 힘을 원합니다. 약하다는 것은 곧 위험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힘을 가지려고 애씁니다. 더 많이 배우고, 더 크게 소유하고, 더 높이 올라가려는 이유도 결국은 자기 자신을 지키고 안전하게 살고 싶어서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인간이 힘을 쥐고 자기 뜻대로 살아가려 할 때, 그 길은 결국 저주의 길이며, 하나님 없는 멸망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6장은 인류의 타락이 어디까지 갔는지를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보고 그들의 아름다움을 따라 아내를 삼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단순히 결혼 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결혼은 원래 사랑과 헌신, 곧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비추는 거룩한 언약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언약을 무너뜨리고, 결혼을 쾌락과 힘의 도구로 삼았습니다. 외적인 아름다움이 기준이 되었고, 자기 만족이 목적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세상은 힘의 질서로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힘 있는 자들은 자기 눈에 좋아 보이는 대로 취했습니다. 약한 자들은 보호받지 못했고, 정의는 사라졌습니다. 성경은 그 시대에 “네피림, 거인들”이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들은 힘과 권세의 상징이었지만, 동시에 타락의 산물이었습니다. 인간이 자기를 지키고자 만든 질서, 곧 힘의 세계가 만들어낸 괴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세상은 어떻습니까? 사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강한 자를 숭배합니다. 돈 많은 사람, 성공한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 외모가 빼어난 사람들을 우러러봅니다. 교회 안도 예외가 아닙니다. 크고 웅장한 건물, 많은 성도 수, 사회적 영향력을 자랑하는 교회가 더 큰 교회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마치 “거인 숭배 문화”가 교회 안에 들어와 버린 듯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겉모습의 크기가 아닙니다.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가, 바로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힘이 됩니다.
십자가는 세상 눈에 가장 약한 힘입니다. 실패처럼 보이고, 무능력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십자가 안에서 참된 생명과 승리를 주셨습니다. 인간이 자기를 지키려고 만든 힘은 결국 서로를 파괴하지만, 하나님께 순종하는 힘은 죽음조차 이기고 새 생명을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세상의 힘을 붙드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힘으로 삼는 삶입니다. 사업이 무너질 수도 있고, 건강이 약해질 수도 있고, 인간관계가 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잡는 사람이 참으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실패와 질병, 눈물과 고난 속에서도 “주님만이 나의 힘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창세기 6장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힘으로 삼고 있느냐?" 거인의 힘입니까, 아니면 십자가의 힘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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