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많은 일들은, 겉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겪어보는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멀리서 볼 때는 단순해 보이던 일이 막상 자신이 그 한가운데에 들어가면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냅니다. 피상적으로 이해하던 일이 실제의 무게를 지닐 때 우리는 놀라고 당황하게 됩니다.
이런 일은 영적인 영역에서는 훨씬 더 심각하게 드러납니다. 성경의 세계, 하나님의 일은 머리로만 이해해서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영적인 일은 반드시 ‘직접적인 경험’이 수반될 때 비로소 진짜 의미가 드러납니다. 이론만으로 아는 것은 위험할 뿐 아니라, 자칫하면 오해로 인해 그 길을 두려워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 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사도 바울(회심 전의 사울)입니다. 그는 율법에 철저하고, 종교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바리세인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라는 이름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갈릴리와 유대 전역을 뒤흔들던 예수의 소문을 듣지 못했을 리 없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예수를 찾아가거나 그 현장을 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에 대한 그의 무관심은, 오히려 그의 종교적 열심 때문이었습니다.
그에게 예수란, 정통 유대 신앙을 어지럽히는 ‘이단적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기적과 이적은 그에게 진리의 증거가 아니라 ‘무지한 백성들을 현혹시키는 비합리적인 현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수호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가 다메섹으로 가던 길 위에서 한순간에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싸고, 그는 땅에 엎드려 들었습니다. 그때 그에게 들린 음성,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그의 입에서는 즉시 이렇게 터져 나왔습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 짧은 한마디는 놀라운 고백이었습니다. 그는 분명 그 음성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본능적으로 그를 ‘주’라 불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놀람의 표현이 아니라, 성령의 강력한 감동 아래서 터져 나온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그 순간, 사울의 인식은 무너졌고, 그의 세계는 완전히 새로워졌습니다.
그날의 체험은 그에게 단순한 환상이나 착각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 일 이후 오랫동안 홀로 아라비아 광야로 들어가 묵상과 고독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사건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깊이 생각하면서 그는 점점 깨달았습니다. 그가 이전까지 성경에서 보지 못했던 ‘그리스도의 비밀’이 그의 눈앞에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때부터 그는 단순히 ‘율법을 해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를 직접 경험한 사람, 복음의 실체를 살아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신학의 이론가가 아니라, 체험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의 백성을 말씀과 경험이라는 두 가지 통로로 인도하십니다. 때로는 성경의 말씀을 통해,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영적 경험을 통해 우리를 부르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경험을 두려워하거나 무시한다는 데 있습니다. ‘말씀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생생한 체험의 차원을 스스로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말씀은 영원한 기준이요 진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말씀을 살아 있는 경험 속에서 깨닫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을 수십 번 읽어도, 단 한 번의 강력한 성령의 만남이 그 모든 이해를 새롭게 바꾸어버릴 수 있습니다. 바울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우리의 영적 경험은 단순한 감정적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비밀 속으로 초대하시는 은혜의 사건입니다. 그 경험이 어떤 형태로 오든지, 그 안에서 우리가 깨닫고 변화된다면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비밀에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영적 경험은 때로 낯설고 두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무시하거나 피하지 않는다면, 그 경험을 통해 우리는 더욱 깊이 주님을 알게 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진정한 신앙인으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를 깨닫게 하지만, 경험은 그 말씀을 살아나게 합니다. 바울은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이었지만,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길 위에서 말씀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낯선 경험의 부르심’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그 부르심 속에는 우리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계획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네가 무익한 종이라 할지라도, 이제는 내 은혜로 충분하니라.” (고린도후서 12:9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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