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고린도전서 5:9~13)
작은 시골 마을에 감염병 전문 병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병원의 특별 병동에는 같은 병에 걸린 환자들이 입원해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불의(不義)'라는 병이었습니다. 이 병의 무서운 점은 증상이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병실의 환자는 온몸에 붉은 반점이 돋아 누가 봐도 중환자로 보였습니다. 간호사들도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마스크를 고쳐 쓰며 조심스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옆 병실 환자는 겉으로 아무 증상이 없었습니다. 낯빛도 좋고 걸음도 멀쩡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은 우리와 다르구나. 건강한 사람이구나.'
그러나 병원장은 매일 아침 회진 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이 병동에 있는 모든 환자는 같은 병을 앓고 있습니다. 증상이 보이든 안 보이든, 이 병의 이름은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 병에는 우리 병원이 만든 약이 아니라, 오직 원장님이 직접 자기 몸을 내어 만든 한 가지 백신밖에는 치료법이 없습니다." 증상이 없는 환자들은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불편해했습니다. '나는 저 사람들과 다른데 왜 같은 취급을 받아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들은 이미 자신이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린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도 이와 비슷한 혼란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전에 쓴 편지에서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 말을 아주 명료하게 이해했습니다. '아, 음행하는 사람을 멀리하고 가까이하지 말라는 뜻이구나.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 다르니까, 거리를 두는 게 맞겠구나.'
그런데 바울은 다시 편지를 씁니다. "그 말은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과 도무지 사귀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그러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말합니다. "형제라 하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을 숭배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 말이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귀지 말라 했다가, 그런 뜻이 아니라 했다가, 다시 사귀지 말라 합니다. 하지만 이 혼란스러움 속에 바울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 숨어 있습니다.
바울이 나열한 목록을 다시 보십시오. 음행, 탐욕, 우상숭배, 모욕, 술 취함, 속여 빼앗음. 병동의 비유로 돌아가면, 온몸에 붉은 반점이 난 사람은 '음행'이라는 눈에 보이는 증상을 가진 환자입니다. 그런데 '탐욕'이나 '모욕'이라는 병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마음속에서 조용히 진행되는 병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병원장의 진단서에는 이 두 가지가 나란히 적혀 있습니다. 같은 병, 같은 목록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고린도 교회의 그 사람의 죄가 악합니까?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말로 모욕하는 죄는 악하지 않습니까? 둘 다 똑같이 악합니다. 바울은 어느 하나가 더 낫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무섭습니다. 음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탐욕에서, 모욕에서, 우상숭배에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면, 그것 역시 우상숭배의 한 형태일 수 있습니다. 남을 은근히 깎아내리는 말 한마디,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더 갖고 싶어 하는 욕심, 이 모든 것이 같은 진단서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붉은 반점이 없다고 해서 병실 밖으로 걸어 나갈 자격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증상이 다를 뿐, 병은 하나입니다. 우리는 음행하는 형제를 손가락질할 자격이 없는, 같은 병동의 환자들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한 "사귀지 말라"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면, 무엇을 사귀지 말라는 것일까요? 여기 한 가정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부잣집에 입양된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원래 고아원에서 자라며 하루하루 먹을 것을 걱정하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부부가 찾아와 이 아이를 자기 아들로 삼았습니다. 법적으로 완전한 아들이 된 것입니다.
이 아이가 훗날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공부를 잘해서일까요, 착한 일을 많이 해서일까요? 아닙니다. 상속의 근거는 단 하나, '아들'이라는 관계입니다. 성적표가 아니라 호적등본이 상속의 근거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한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은 우리의 행실 점수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관계 때문입니다.
이 관점에서 다시 "사귀지 말라"는 말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은 특정한 사람을 피해 다니라는 절교 선언이 아닙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삶의 원리, 곧 '내가 무언가를 이루고 갖추어서 나 자신을 만족시키겠다'는 그 방향성과 함께 걷지 말라는 뜻입니다. 음행도, 탐욕도, 속여 빼앗음도, 우상숭배도 결국은 전부 자기만족을 향해 달려가는 것들입니다. 그 방향으로 함께 달려가지 말라는 것이지, 그 사람 옆에 앉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처음에 이야기한 병동의 병원장이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증상이 있는 환자와 없는 환자를 갈라서 격리하는 것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병원장이 원한 것은 모든 환자가 자신이 같은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오직 원장 자신이 내어준 백신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붉은 반점이 있는 환자든 없는 환자든, 진단서를 받아들고 "저는 병이 없습니다"라고 우기는 사람은 치료받을 수 없습니다. 반대로 자기 병을 인정하고 원장이 내민 백신 앞에 엎드리는 사람, 그 사람이 병동을 나갈 자격을 얻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도덕적으로 흠 없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자신이 심판 아래 있는 존재임을 알고, 그 심판에서 건져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엎드린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래서 본문 마지막에 나오는 "내쫓으라"는 말도, 사람을 도덕적으로 정죄해서 쫓아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의롭다 여기며 복음 앞에 엎드리기를 거부하는 태도, 그것을 교회에서 내쫓으라는 것입니다. 복음만이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붉은 반점이 있어도, 없어도, 우리 모두의 이름표에는 똑같은 진단명이 적혀 있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자리에서만, 우리는 비로소 그리스도의 은혜를 붙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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