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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 만물의 찌꺼기 같이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5. 11.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고린도전서 4:9~13)

어린 시절, 동네 어귀에 다 쓰러져 가는 집 한 채가 있었습니다. 대문은 삐걱거렸고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눈길을 피했습니다. 볼품없고 쓸모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집 주인은 마을 전체에 물을 대던 수원지를 혼자서 수십 년 간 관리해 온 노인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편히 마시던 물이 바로 그 초라한 집에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그 노인이 없었다면 마을 전체가 메말랐을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는 이와 비슷한 역설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13절). 스스로를 찌꺼기라 부르는 이 사람은 지중해 세계 전역을 누비며 복음을 전하던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왜 이토록 자신을 낮추는 말을 했을까요? 그리고 이 말은 고린도 교회를, 그리고 지금 우리를 향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인간은 소유를 향해 달립니다. 재물만이 아닙니다. 권력이 되는 자리, 명예가 되는 역할,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위치, 이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어 합니다. 문제는 그 욕망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심지어 거룩한 이름을 달고 교회 안으로 들어오느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세우신 자리였지만, 그들은 그 자리를 하나님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권력으로 소유해 버렸습니다. 제사장도, 선지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거룩한 직분이 탐욕의 도구가 되는 일은 성경 안에서도, 성경 밖 역사에서도, 그리고 지금 이 시대의 교회에서도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 욕망 안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과 아볼로, 게바를 각자 추종하며 파벌을 이루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신앙의 열심처럼 보였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인기 있는 지도자를 내 편으로 만들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힘을 내 손에 쥐려는 욕망이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일부에서 목사를 '
하나님의 대리자'처럼 여기며 그의 기도와 축복이 응답의 통로가 된다고 믿는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을 신앙의 중심에 놓는 순간, 교회는 복음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빠진 함정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지점을 정면으로 겨냥합니다.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8절). 이것은 비꼬는 말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스스로를 이미 부요하고 지혜롭고 왕 같은 존재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이 세상에서도 높아지고 강해져야 한다는 믿음이 그들의 신앙을 지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 믿음이 얼마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동떨어진 것인지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현실을 꺼내놓습니다.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11절). 복음을 전하는 사도의 현실은 왕의 현실이 아니었습니다. 떠돌이의 현실이었고, 굶주린 자의 현실이었고, 얻어맞는 자의 현실이었습니다.

교도소 담당 교목으로 오래 사역한 한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해 성탄절, 그는 수감자들 앞에서 설교를 마치고 나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
오늘 여기 오기 전에 저는 교회에서 목사 안수 25주년 기념 예배를 드렸습니다. 성도들이 금메달을 달아주고 꽃다발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기 와서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지금이 더 제자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도 그 이유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예수님이 계셨을 것 같은 자리가 여기라는 느낌이 든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
만물의 찌꺼기'라고 부른 것은 겸손의 미덕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바울의 말을 흉내 내어 "저는 만물의 찌꺼기와 같은 존재입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바울과 같은 신앙의 길을 걷는 것은 아닙니다. 말의 형식이 아니라 그 말이 어디서 나왔느냐가 중요합니다.

바울이 그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부요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가장 천한 자리인 사형수의 자리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것이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방식이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예수님이 낮아지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높아질 길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부요해질 길은 없었습니다. 그 역설이 십자가의 핵심입니다.

마태복음 27장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군중이 조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마 27:40). 당시 사람들의 논리는 단순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자기 자신쯤은 구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하늘의 천사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들을 동원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이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실패이고 패배이고 하나님의 부재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구원의 완성이었습니다.

바울은 바로 그 예수님이 가신 길로 부름 받았습니다. 죽이기로 작정된 자처럼 끄트머리에 두심을 받고,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는 길입니다. 그 길에서 바울은 자신을 구해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모욕을 당하면 축복하고, 박해를 받으면 참고, 비방을 받으면 권면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의지로 가능한 길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보았기 때문에 갈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는 흔히 신앙생활을 잘하면 하나님이 도우시고 복을 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문제없는 신자, 문제없는 교회가 신앙의 목표가 됩니다. 그러나 이 생각이 얼마나 십자가로부터 멀리 떨어진 것인지 바울의 편지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문제없는 인간은 없습니다. 문제없는 교회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문제없는 교회를 꿈꾼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가는 어떤 이상에 마음을 두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거기에 있는 한, 십자가는 점점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십자가를 끊임없이 증거한 것은 교회의 분파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분파라는 문제를 통해 자기 자신을 보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달은 그 자리에서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앞에서 그리스도의 용서를 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은 우리가 꿈꾸는 현실을 무너뜨립니다.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소유, 더 안전한 삶을 향해 달리는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다른 현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이미 약속하시고 반드시 이루실 영원한 나라입니다.

세상은 찌꺼기를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찌꺼기가 된 자리에 서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바울은 그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이 찌꺼기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실패처럼 보이지만 실패가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 때로 끄트머리처럼 느껴질 때, 구경거리가 된 것처럼 느껴질 때, 바울의 고백이 우리를 붙잡습니다. 그 자리가 바로 십자가를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고린도전서 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