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고린도전서 4:6~8)
경상북도 어느 산골 마을에 두 형제가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오래전 세상을 떠났고, 형제는 가난한 살림에 서로 의지하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먼 친척 어른이 찾아와 뜻밖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아버지가 생전에 남긴 유산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산 너머 큰 마을에 논밭이 있고, 그것이 두 형제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형은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버지가 그것을 남겨두셨다는 사실 자체가 감격이었습니다. 이후 형은 마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아버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이런 분이셨어. 그분이 남겨주셨기에 지금 내가 이렇게 살 수 있다네." 그에게 유산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감사의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달랐습니다. 유산을 손에 쥐자마자 그것이 마치 자신의 능력으로 이룬 것인 양 굴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땅이 얼마나 넓은지 말하고 다녔고, 형보다 자신이 더 많이 가진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느 순간 이야기에서 사라졌습니다. 남은 것은 자기 자랑뿐이었습니다. 두 형제는 같은 것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알았고, 다른 한 사람은 잊었습니다. 그 차이가 두 형제의 삶 전체를 갈라놓았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던진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전 4:7) 고린도 교회는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바울 파", "나는 아볼로 파"라며 사람을 중심으로 편을 갈랐습니다. 그리고 자기 편의 사람을 높임으로써 자신도 덩달아 높아지려 했습니다. 바울을 비난함으로써 아볼로를 추종하는 자신들의 우월을 증명하려 했고, 아볼로를 깎아내림으로써 바울 파의 위상을 세우려 했습니다. 교회 안에 판단과 비난과 경쟁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상황을 설명하면서 묘한 방식을 택합니다. 자신과 아볼로의 관계를 본으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바울과 아볼로는 서로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약점을 찾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울이 말하는 '본'이었습니다. 왜 그럴 수 있었을까요? 사이가 좋아서였을까요? 둘 다 성품이 넉넉해서였을까요? 아닙니다. 바울의 답은 훨씬 깊은 곳에 있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신의 존재가 어떻게 확정되어 있는지를 알았을 때, 남을 판단하고 대적할 근거 자체가 사라집니다.
출애굽기의 마지막 재앙 장면을 떠올려보십시오. 애굽 땅 전역에 죽음의 사자가 임하던 밤이었습니다. 모든 처음 난 것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밤, 살아남은 집과 그렇지 않은 집을 가른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문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바른 어린양의 피였습니다. 그 집 안에 사는 사람이 얼마나 선한 사람인지, 얼마나 부지런한 사람인지, 얼마나 경건한 사람인지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피가 있느냐, 없느냐, 오직 그것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피를 바른 뒤, 아침까지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집 문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피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고, 피 밖으로 나간 이스라엘 사람은 애굽 사람과 동일하게 취급되었습니다. 그가 아무리 아브라함의 후손이어도, 아무리 할례를 받은 자여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피 안에 머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스라엘이든 애굽이든, 그들의 운명은 피로써 확정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됨이 아니었습니다. 행함이 아니었습니다. 그 어떤 것도 피로 확정된 운명을 바꿀 수 없었습니다. 바울이 말한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를 증거합니다. 그 말씀 밖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피 밖으로 나가는 것이고, 피 안에서 피의 은혜로 존재하는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잊는 순간, 사람은 다시 자기 자신을 증명하려 합니다. 자랑거리를 찾고, 남을 판단하고, 편을 가릅니다. 고린도 교회의 분열은 신학적 논쟁이 아니라, 피 안에 머물기를 잊어버린 자들의 필연적인 결과였습니다.
이제 바울의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이것은 책망이 아닙니다. 오히려 선물의 고지입니다. "너는 구별된 자다. 하나님이 창세 전에 예정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하시고, 성도로 불러주신 자다. 네가 원해서가 아니다. 네가 노력해서가 아니다. 주어진 것이다.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 바울이 더 뛰어나고 아볼로가 덜 뛰어난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바울도, 아볼로도, 고린도 교인들도, 모두 같은 피 안에 있습니다. 모두 받은 자입니다. 받은 자들이 모여 함께 받은 것을 자랑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오래 섬겨온 권사님이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남편과 함께 교회 개척에 참여했고, 수십 년을 묵묵히 봉사해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로 부임한 젊은 목사가 교회 분위기를 바꾸려 하면서 오래된 성도들과 갈등이 생겼습니다. 권사님도 마음이 많이 상했습니다.
어느 날 밤 기도하다가 그분이 혼자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내가 이 교회를 위해 얼마나 많이 해왔는데…" 그 순간 그분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습니다. '내가 한 것'이 자랑이 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은 사라져 있었습니다. 그분이 나중에 간증하길, 그날 이후 기도의 방향이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저 같은 것을 이 교회에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로 말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받은 자가 받지 않은 것처럼 자랑하는 것과, 받은 자가 받은 것을 자랑하는 것의 차이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이것은 칭찬이 아닙니다. 냉정한 진단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복음 없이 왕 노릇하고 있었습니다. 육신의 것으로 배부르고, 사람의 것으로 풍성했습니다. 바울이 없어도, 복음이 없어도, 그들은 이미 스스로 충분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따르고, 사람을 자랑하고, 사람으로 왕 노릇했습니다.
로마서 5장 17절은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은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라고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자들이 땅에서 왕 노릇하리라고 노래합니다. 왕 노릇은 권력이 아닙니다. 생명 안에서 배부르고 풍성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비밀을 알고, 그 은혜 안에서 충만한 것입니다. 바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고린도 교회가 복음 안에서 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함께 라는 단어가 핵심입니다. 각자가 자기 자랑으로 뭉친 집단이 아니라, 같은 것을 받은 자들이 그 받은 것을 함께 자랑하는 공동체, 서로를 판단하고 대적하는 경쟁의 관계가 아니라, 같은 피 안에서 같은 감사로 살아가는 관계, 그것이 교회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머리로는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삶은 여전히 고린도 교회를 닮아 있습니다. 받은 것을 잊고 자기 것을 자랑하려 합니다. 복음보다 사람에게 마음을 두고, 그리스도의 피보다 눈에 보이는 실적과 능력과 품위에 기대어 우열을 가리려 합니다. 출애굽 그 밤, 피 안에 머문 자들에게 아침이 왔습니다. 그 아침은 그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피가 가져다준 아침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아침은 같은 방식으로 받은 것을 기억하는 사람에게, 피 안에 머무는 사람에게, 그 은혜를 함께 자랑하는 공동체에게 옵니다. 그것이 교회가 왕 노릇하는 방식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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