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이사야 8:6)
우리는 늘 “빨리”를 외치며 살아갑니다. 빨리 성공하고, 빨리 해결되고, 빨리 성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늘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처럼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끊임없이 흐릅니다. 문제는 인간이 그 느림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줄기를 버리고, 당장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람과 에브라임, 더 나아가 앗수르의 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미약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자신들이 의지한 앗수르에게 삼켜지고 말았습니다. 그 흉용하고 창일한 큰 물결이 유다의 목까지 차오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경고였습니다. “너희가 나를 버렸기에, 내가 너희가 의지한 세상을 너희에게 경험하게 하리라.”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천천히 흐릅니다. 십자가의 길이 그렇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패배처럼 보이고, 세상의 눈에는 너무 느리고, 너무 약하고, 너무 조용합니다. 그러나 그 길의 끝에는 부활이 있습니다. 실로아 물은 예루살렘 성으로 흘러들어가 성전 아래서 생명을 낳는 물입니다. 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러나온 보혈이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우리의 심령을 적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물의 느림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긴다 하면서도, 내 뜻대로 안 되면 불안해합니다. 기도한 후에도 다시 손에 쥐어 조작하려 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해 세상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보려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멈춰라. 내가 하겠다.”
멈춤은 패배가 아닙니다. 멈춤은 신앙의 첫걸음입니다. 내 힘으로 숨 가쁘게 달려가던 인생이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속도에 맞추기 시작할 때, 비로소 안식이 찾아옵니다. 그것이 “편안할 안(安)”과 “숨쉴 식(息)”이 합쳐진 안식(安息) 입니다. 하나님께서 멈추게 하실 때, 그것은 징벌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분의 징계는 벌이 아니라 “자녀 만들기”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세우기 위한 손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느림을 두려워합니다. 조용한 은혜보다 요란한 성공을, 실로아의 물보다 앗수르의 강을 더 신뢰합니다. 그리하여 스스로의 불안을 잊기 위해 종교마저도 또 다른 “방법" 으로 삼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조차, 내 불안과 공허를 메우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만들어버립니다. 그것이 오늘의 비극입니다. 예수를 믿지만, 예수 안에 머물지 못하는 신앙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빠름’이 아니라 ‘깊음’입니다. ‘성취’가 아니라 ‘신뢰’입니다. ‘행동’이 아니라 ‘머무름’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멈추어 서서 그분이 이미 이루신 은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결 속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게 됩니다. 그 물이 우리의 상한 마음을 씻기고, 조급한 영혼을 가라앉히며, 우리의 걸음을 다시 주님의 속도에 맞추게 합니다.
혹시 지금 너무 바쁘게, 너무 급하게, 너무 조바심 내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일조차도, 교회의 사역조차도 때로는 내 욕망의 속도를 채우기 위한 달리기일 때가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렸도다.”
이 말은 단순한 꾸짖음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라는 초대입니다. 실로아 물은 오늘도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 물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그 보혈이 당신의 심령을 적실 때, 비로소 참된 쉼과 위로와 능력이 임합니다. 그러니 이제 그분의 흐름 속에 자신을 맡기십시오.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예수의 십자가 아래에서 천천히 숨을 고르십시오. 그분이 당신을 업고 가실 것입니다.
주님, 우리의 조급한 마음을 멈추게 하시고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은혜의 물에 몸을 맡기게 하소서. 세상의 강한 물결에 휩쓸리지 않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보혈로 오늘도 우리의 영혼을 쉬게 하소서. 오직 주님 안에서 안식과 생명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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