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란 무엇일까요? 때로 기도는 화려한 언어도, 멋진 수사도 아닙니다. 기도는 그저 작은 돛단배처럼,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고, 바람이 불어오는 대로 움직이는 그 배처럼 말입니다.
영국의 화가 크레이기 에이치슨이 즐겨 그렸던 그림 가운데 ‘배’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림 속 배는 특정한 바다 위를 항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은 우리가 흔히 아는 현실의 바다가 아니라, 신비롭고도 알 수 없는 삶의 바다를 떠다니는 듯한 풍경을 보여 줍니다. 바람에 밀려 어디론가 가고 있지만, 배 안에 누가 있는지조차 분명히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저 아래 어딘가에 뱃사람이 잠자코 누워 있음을 짐작할 뿐입니다.
바로 이 장면이 기도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기도라는 배에 몸을 싣습니다. 그러나 방향을 잡고 노를 젓는 것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 배에 올라탄 이는 우리이지만, 그 배를 움직이고 이끌어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기도는 내가 내 뜻대로 바람을 거슬러가며 조종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바람에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도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디로 데려가시고자 하는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무력하게 느껴지고, 내가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불안하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는 바로 그 무력함을 받아들이는 자리입니다. 내가 아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그분께 나를 내어드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신뢰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훈련이요, 순종의 자리입니다.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 기도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며, 우리의 기도가 아버지께 닿게 하시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혹시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셨지만, 끝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뜻에 “예”라고 응답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때로는 하나님이 계신지조차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도해도 아무 응답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의 바람이 우리를 품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 배 안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쉬고 있을 뿐이고,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실 것입니다.
기도는 내 힘으로 인생의 방향을 조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키를 내려놓고, 돛을 활짝 펼쳐, 바람이 불어오는 대로 하나님께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 배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머물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우리는 결국 두 가지 선택 앞에 서게 됩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순순히 맡기고 잠자코 그 배 안에 머무는 것, 다른 하나는 일어나서 스스로 배의 키를 잡고 내 뜻대로 항해하려는 것입니다.
기도란, 그 배 안에 머물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삶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장이시고, 우리는 그분이 인도하시는 바다 위를 항해하는 작은 배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눈에는 희미한 별빛만 보일 뿐이지만, 그 끝에는 우리를 기다리시는 아버지가 계십니다.
하나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도 되시면서 ‘아니요’도 되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분께는 ‘예!’만 있을 따름입니다.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린도후서 1:19~20)
기도는 하나님께 순순히 “예”라고 말하는 길입니다. 돛단배처럼 흔들리며 나아가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향해 늘 신실하게 “예”라고 하시는 주님께서, 바람이 되어 우리를 아버지께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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